충무공 이순신 > 온라인 유적지 탐방
관리자
201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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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진해시 앵곡동
한국의 해군사관학교는 8 · 15광복과 함께 창설된 해방병단(海防兵團)의 교육기관이었 던 해방병단학교를 모체로 하여, 그 후 해안 경비대 사관학교 · 해안경비대학 · 해사대학 · 해군대학 등으로 호칭되어 오다가 1949년 에 정식으로 해군사관학교로 개칭되었다.
현재는 해군본부의 예속기관으로서, 일반대학의 입학 자격을 가진 만 17∼21세의 대한민국 남녀 중에서 생도를 선발하여 4년간에 걸쳐 해군장교에게 필요한 각종 교육을 실시한 후, 졸업과 동시에 해군소위로 임관시키며, 동시에 학사의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은 충무공 이순신의 애 국애족정신과 그의 위대한 해전활약상, 선조 들의 해양활동 역사를 해군장병과 사관생도 들에게 교육시킬 목적으로 한국해군에 의해 설립되었다.
1946년 1월 17일에 창설된 이후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문헌자료를 수집하여 왔으며, 그 문헌자료들을 전시하기 위해 도서관 내에 문헌 전시실을 임시로 운영하였다.
그 후 개교 30주년 기념일인 1976년 1월 17일을 맞이하여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이 창설되었는데, 당시에는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문헌 전시실을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창설 당시의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은 도서관 건물의 일부를 빌려서 사용했으며, 그 규모는 작은 사무실 1칸에 불과했다.
그러한 가운데 박물관은 1980년 1월 31일에 충무공 이순신이 창제한 거북선을 실물 크기로 복원하여 해군사관학교의 귀빈부두 해상에 계류 전시하였고, 1981년 2월 23일에는 독립된 박물관 건물을 해사반도의 현 위치에 신축하였다.
그리고 1990년 4월 28일에는 박물관을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은 2층 건물과 3층 건물이 접합된 형태의 건물 구조를 갖고 있으며, 총 넓이는 2,622㎡이다. 전시실은 3곳(이충무공실, 해군해양실, 해사실)이며 그 면적은 1,719 ㎡이다. 박물관은 전시실 이외에도 관장실, 기획실, 관리실, 자료실 및 기계실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거북선은 전라좌수사였던 충무공 이순신이 일 본의 침입을 예견하고서 임진왜란 (1592-1598) 직전인 1591년에 건조한 당대 무비의 전선이다.
거북선은 그 크기가 당시 다른 유형의 전선과 거의 같았지만, 전투력을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건조되었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거북선의 선체는 2치에서 1자 사이의 두꺼운 목재를 사용하여 매우 튼튼하게 만들어졌고, 개판 위에 철갑을 덮은 후 쇠못을 꽂아 적이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리고 안에서 밖을 바라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거북선은 16개의 노와 2개의 돛을 겸용하여 항해했는데, 돛대는 세웠다 뉘었다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함포 구멍은 모두 14개였는데, 좌우현에 각각 6개가 있었고, 또한 선수의 용머리 부분과 선미의 거북꼬리 부분에 각각 1개씩 있었다. 거북선은 전체적인 모습이 거북과 비슷했기 때문에 거북선으로 불리었다.
거북선은 전투를 할 때 거적으로 쇠못을 덮은 채 돌진했으며, 이를 모르고 거북선에 뛰어드는 적병은 쇠못에 찔려 죽거나 부상당했다.
또한 거북선을 에워싸고 엄습하려 하는 적선에게 전후좌우에서 총포를 일시에 발사하여 혼비백산케 하였고, 적진을 종횡무진하면서 적선에 큰 피해를 주었다.
거북선은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의 지휘아래 사천, 당포, 한산, 부산 등 여러 해전에서 선봉 돌격선으로 출전하여 많은 일본선을 격파하고 제해권을 장악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