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온라인 유적지 탐방
관리자
201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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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포해전 (玉浦海戰)
1592년(선조 25) 5월 7일 옥포(지금의 경상남도 거제시 옥포동)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일본의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의 함대를 무찌른 해전이다.
임진왜란 초기, 왜군의 기세에 밀려 많은 군사를 잃었던 경상우수사(慶尙右水使) 원균(元均)은 전라·충청 지방에 이르는 해로(海路)의 목줄인 옥포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이순신은 휘하의 판옥선(板屋船) 24척, 협선(挾船) 15척, 포작선(鮑作船) 46척을 이끌고 여수를 출발하여 역사적인 제1차 출전을 감행, 당포 앞바다에서 합세하였다. 이때 원균은 그가 거느리고 있던 70여 척의 전선을 모두 잃고 겨우 6척(판옥선 4척, 협선 2척)으로 합세하였다.
경상우도 수군과 연합한 이순신 함대는 거제도 남단을 돌아 거재도 동쪽 해안의 송미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여기서 송미포라고 하면 거제시 남부면 다대포의 옛 이름인 송변현의 송미포를 말한다.
한편 송미포에서 1박한 다음날 새벽에 이순신 함대는 우척후장 김완과 좌척후장 김인영을 선두로 가덕도 방면으로 북상했다. 척후장은 요즘 말로 하면 정찰대장 또는 수색대장이라고 보면 된다. 이날 낮 12시경 척후선이 옥포만에 약 30여 척의 왜선이 정박하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신기전을 쏘아 올려 본대에 알려왔다. 신기전은 점화를 하면 자체 추진력으로 로켓처럼 날아가는 화살인데, 옥포해전에서는 신호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이순신 장군은 장졸들에게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게 있게 행동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고 지시한 상태였다. 첫 번째 시작하는 전투에서 공포심과 전쟁경험 부족을 극복하고 전장에서의 여유와 냉철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한 말씀이다.
이순신 함대는 항로를 바꾸어 옥포 포구 안으로 진입하여 왜군 선단을 공격해 들어갔다. 옥포만 일대에 상륙하여 주변을 약탈하던 중이었던 왜군은 옥포만으로 돌입하는 이순신 함대를 발견하고 급히 승선하여 선봉 6척이 먼저 응전해왔다. 조선 수군은 이들을 포위하면서 총통과 화살을 쏘았고, 일본 수군은 조총 등으로 응사했다.
조선 수군은 퇴로를 봉쇄하고 함포사격을 퍼부으며 해안선 쪽으로 밀어붙였다. 적들은 포위망을 뚫고 외양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포위망에 갇혀 26척이 격침되었다. 이 전투에서 조선 수군은 튼튼한 판옥선을 적선과 충돌시켜 파괴해버리는 당파전술(撞破戰術)을 사용하여 위력을 발휘했다. 이것이 임란 해전 최초의 승리를 거둔 옥포해전이다.
이어 합포(合浦:경남 마산) 앞바다에서 적선 5척, 다음날 적진포(赤珍浦 : 통영시 광도면)에서 적선 11척을 불태우는 전과를 올렸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