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실천하는 이순신 포럼

충무공 이순신 > 온라인 유적지 탐방

명량대첩 코스1 (전라우수영)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04-22

조회 16,280



전라우수영.jpg

전라우수영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에 있는 조선시대 전라우도 수군 본부 옛터.


1992년 3월 9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39 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6,005㎡이고 서쪽 성벽은 길이 50m, 북쪽 성벽은 400m이다. 고려 말기 1377년(우왕 3) 수군처치사영(水軍處置使營)이 무안 대굴포(大掘浦:현 함평)에 설치된 것이 그 기원이다. 


1440년(세종 22)에 지금의 위치인 해남 황원곶(黃原串)으로 옮기고 1465년(세조 11) 군절도사영(水軍節度使營:정3품)으로 승격되었다. 1479년(성종 10)에 순천 내례포(內禮浦:현 여수)에 또 하나의 수영(水營:좌수영)이 설치되면서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영(전라우수영)이라 하였다.


《해남현읍지(海南懸邑誌)》에 따르면 성의 둘레 3,843자, 높이 20자, 옹성 4개, 연못 1개, 우물 2개가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전라우도 연해 지역 14관을 관할하였을 만큼 위력이 컸으며 정유재란 때 명량대첩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나주·영광·함평·무안·영암·해남·진도 등 7고을을 관할하였고 금갑도·남도포·어란진·고금도·신지도·마도진·목포진·이진진·다경포·법성포·임치진·지도진·주도진·금모포·고군산·선산진·흑산도·청산진·가리포 등 19개 수군의 진을 거느렸다.


조선 후기의 전라우수영에는 관사로서 26개의 각종 당청이 있었고, 중요 시설로 선청과 집회소·회의장소로 사용된 12개의 누정이 있었다. 또 성남문 밖에 석축으로 만든 4개의 항구 시설이 있었다. 군선으로는 전선 2척, 귀선 2척, 해골선·방골선이 각 1척, 병후선 8척 등 모두 17척을 보유하였다. 여기에 사부·화포수·타공·웅노·기라졸 등의 수군을 배치하였다.  


북쪽은 높고 남쪽은 낮은 구릉지로서 해안에 면한 남쪽 성벽은 돌로 쌓았다. 북쪽 성벽은 흙으로 쌓았는데 설치 위치로 보아 해안성이며, 성을 쌓은 재료로 보면 토성과 석성의 혼합성이다. 평면 형태로 사각형과 원형의 중간 형태인 부정형 성이며, 축성 방법으로는 편축에 해당된다.


성돌은 일반적으로 아래쪽은 150㎝ 전후의 큰 것들이나 위로 올라가면서 30∼50㎝ 정도로 작은 것들로 쌓았다. 2000년 현재 남쪽 성벽은 심하게 훼손되었고 서외리(西外里)·선두리(先頭里)에 성축이 약간 남아 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추천메일 보내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