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온라인 유적지 탐방
관리자
201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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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산성
용장산성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곳으로 몽고군에 항복한 고려정부군에 반기를 든 삼별초의 기지가 있던 곳이다. 삼별초는 정규군이 아닌 고려 최씨 정권의 사병과 같은 역할을 하던 부대로 무신정권 기간 권력유지의 핵심 기반이었다. 강화도로 천도를 해 30년 동안 몽고에 맞섰던 고려는 몽고에 대하여 강경 입장을 가지고 있던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결국 항복을 하고 개경으로 돌아가는데, 이때 삼별초는 끝까지 남아 몽고군에 대항하기를 주장한다.
해산 명령을 받은 삼별초는 이에 저항하며 근거지를 옮기는데 바로 진도의 용장산성이다. 배중손을 지도자로 하고 왕족인 승화후온을 왕으로 추대한 삼별초는 이곳에서 성과 건물을 새로 짓고 진도 인근의 해상권을 장악하며 고려 정부와 몽고군에 대항한다. 하지만 이곳에 자리 잡은 지 아홉 달이 지나지 않아 여몽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패하게 되고 다시 제주도로 옮겨 가니 용장산성에 머문 시간은 잠시이다.
지금은 행궁 터와 석축만 남아 있는데 그때 지어진 규모가 제법 컸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계단을 따라 석축의 제일 위로 올라가면 이곳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용장산성 옆으로 용장사와 용장산성전시관이 있다. 용장사는 삼별초가 이곳으로 오기 전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나, 옛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새로 지은 건물만 볼 수 있으며 고려 때 만들어진 것이라 추정하는 석불좌상만이 남아 이곳의 역사를 전한다. 전시관에는 삼별초와 용장산성에 관한 모형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운림산방
진도 여행의 일번지, 운림산방이다. 진도 그림의 뿌리이자 한국 남화의 고향이 바로 운림산방이다.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이 살면서 그림을 그리던 곳으로, 이후 그의 후손들이 이곳에서 나고 자라며 남화의 맥을 잇는다. 허련은 진도 태생으로 이웃 땅인 해남 녹우당의 화첩을 보며 그림을 익혔는데, 대둔사에 머물던 초의선사의 소개로 서울로 올라가 김정희에게 그림을 배우게 되면서 그만의 화풍을 만들어간다.
스승인 김정희가 죽은 후 허련은 고향으로 내려와 작품활동을 펼치며 한국 남화의 맥을 형성한다. 남화 또는 남종화라고 불리는 화풍은 전문 화원들이 그리던 북종화와는 대비되는 그림으로 수묵을 가지고 담대하면서도 자유로운 형식으로 선비의 마음을 담아 그리는 산수화를 말한다.
종종 영화나 드라마가 촬영되기도 해 눈에 익은 연못이 보이고 뒤로 허련이 살았던 운림산방이 보존되어 있다. 전시관에서는 허련의 작품을 비롯해 그의 손자인 허건의 작품까지 남화를 대표하고 흐름을 살필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관과 함께 있는 진도역사관에서는 진도의 옛 모습에서 지금까지 그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