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서원
1640년에 건립하였으며 조선 중기의 문신 정탁(鄭琢, 1526~1605)과 그의 셋째아들 정윤목(鄭允穆, 1571~1629)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697년(숙종 23)에 지역 사림과 후손들의 정성을 모아 강당채를 건립하여 도정서원으로 승격하였다.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일부분이 훼철되었으나 1997년 동재, 서재, 전사청, 누각을 새로 지어 복원하였다. 서원 내의 사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2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강당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지붕의 건물로 전면에 난간을 둘러 누각 형식으로 지었다. 서원 앞에 있는 읍호정은 1601(선조 34)년에 건립한 정자로 가파른 경사면을 깎아 강 바로 앞에 세웠다.
정탁은 자 자정(子精), 호는 약포(藥圃)·백곡(栢谷)으로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58년(명종 13)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예조판서·형조판서·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몽진(蒙塵)하는 선조를 호종하였으며, 곽재우·김덕령·이순신 등을 천거하였다. 1603년 영중추부사에 올랐으며, 호종공신(扈從功臣) 3등,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저서로 《약포집》 《용만문견록(龍灣聞見錄)》 등이 있다. 정윤목은 자 목여(穆如), 호는 청풍자(淸風子)·죽창거사(竹窓居士)이다. 조선 중기의 이름난 성리학자이자 글씨에 뛰어나 초서(草書)의 대가로 활약하였다.
정충사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 1550~1593)을 주벽에 모시고 있으며 그의 묘와 신도비가 함께 있다. 남원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순국한 고득뢰(高得賚), 안영(安瑛)도 함께 모셔져 있다. 또한, 고려 때 삼별초의 난을 진압한 양주운(梁朱雲)과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양대박(梁大撲 1543~1592) 등의 위패도 봉안되어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근래에 옛 건물이 있던 자리에 복원하였다. 경내에는 황진의 묘와 신도비 등도 함께 있다. 사우(祠宇)는 정면 3칸·측면 2.5칸 규모이고, 사우의 동남쪽에 자리 잡은 재실(齋室)은 정면 5칸·측면 3.5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해마다 음력 10월 12일에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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