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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6월29일, 진주성이 함락 되었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06-29

조회 13,086



1593년6월29일, 진주성이 함락 되었다.


선조실록 (1593. 7. 16(戊辰)) 에서 발췌

황해도 방어사 이시언(李時言)이 급보를 올렸다.
"신 등이 진주를 외부로부터 지원하기 위하여
삼가(三嘉)의 옛 현(縣) 소재지로부터 진군하였습니다.
-  (중략)  -    "나는 본래 충청도 보령에 사는데,
정로위(定虜衛)에 소속된 인발(印發)이란 사람이오.
충청병사의 군관으로 6월23일에 함안으로부터 진주로
들어갔었소.  -  (중략)  - 
29일 오후에는 모든 진영의 적들이 한꺼번에 성 밑으로
바짝 조여들어 일시에 성을 함락시켰는데, 성 안에서는
죽기 살기로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소.  성 안의 장정들이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소.  나는 새 북문(北門)을 담당하여 지켰는데, 힘껏
싸웠으나 화살이 떨어졌소.  성 바깥 떨어진 곳에 쌓인 시체
속에 파묻혀 있다가 밤을 타서 몰래 빠져나와 산으로 올라가
간신히 걸어서 성이 함락된 사연에 대하여 순찰사에게
보고하였소."  -  (하략)  -

-  박기봉 편저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1592년 10월,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3만의 병력으로 총공세를
폈다가 실패한 왜적들은 이번에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공격해와
지난해의 패배를 만회 합니다.  그러나 왜적들도 전투로 입은 심한
손실로 인하여 전라도로의 진출은 좌절되었고 그만 포기하고 퇴각
하였습니다.

1593년에는 전쟁 당사국인 조선을 배제하고 명나라와 강화협상을
하여 전쟁은 소강상태에 접어듭니다.  육지에서는 조.명엽합군도
추격을 멈추었는데 이 때를 이용하여 왜적들은 진주성 공격을
감행합니다.  아무리 적이라도 너무도 비겁합니다.

창의사 김천일, 충청도 병마사 황진, 경상우도 병마사 최경회 등
많은 순국선열들의 넋을 뒤로하고 진주성은 함락 되었습니다. 
포위당한 9일 동안에 적의 군사들도 많이 죽었지만 비교도 안될만한
군사의 수로 그리고 밖으로부터 응원군도 없었던 성 안의 장수들은
힘이 다 빠져 죽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7월2일에 진주성이 함락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랍고 비통한 심정을 난중일기에 적어 놓았습니다. 7월1일자의
왜선을 몰아낸 것을 아뢰는 장계를 보면 왜적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진주성 공격은 모르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일이 잘 안풀릴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될 때는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조용히 하고 당한 일의 원칙과
기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전략은 제대로 세웠는지
영업에 있어서 부하들과 소통은 잘 이루어졌는지 말입니다.

너무도 열악한 상황에 처한 자신이 기(氣) 죽지 않았는지 자신감을
잃지는 않았는지 의연하게 자기 몸과 마음을 정리하고 추스려서 다시
일어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어떠한 경우에도 나의 편이 되어 싸워
줄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힘을 내십시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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