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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목사 김시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10-14

조회 21,477



진주목사 김시민!

[선조실록1592. 10. 6 壬辰]
비변사에서 건의하였다.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은 전에 그 고을의 판관(判官)으로
있다가 이 벼슬에 승급되어 임명 되었는데, 그 뒤에 남쪽에서
온 보고서에 의하면 힘껏 싸운 사람 중에서 김시민의 공로가
가장 크다고 하였습니다.
사로잡은 자들 중에서 진해의 적장 소평태(小平太)라는 자는
대장은 아니지만 왜적의 장수였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으니
각별히 크게 표창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임금이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올려주라고 지시하였다.

- 박기봉 편역[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김시민은 1554년 충청도 목천현(현재 천안시)에서 태어나
1578년에 24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 하였습니다.1591년
진주판관이 되었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때 진주목사
이경이 병사함에 따라 초유사 김성일의 명에 따라 그 직을
대리 하였고 조정에서는 그 해 8월에 발탁하여 진주목사로
올렸습니다.

제1차 진주성 전투는 임진왜란 발발 이후 처음으로 성을
지켜낸 전투 입니다. 그 당시 진주성 안에는3,800명의 군사
밖에 없었지만 김시민의 완벽한 전투준비와 리더십, 진주
관군과 백성들의 합심, 경상도 의병과의 긴밀한 협력으로
5일동안 10회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 전투 입니다.

약30,000명의 대규모 주력부대가 패배하고 철수한 진주성
전투에 격노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투에 참가한 지휘관들을
비난 하였고, 참모인 구로다 요시타카는 "진주성 공성에 참여한
7명의 장수는 모두 동격의 장수(대장)이기 때문에 각각의 공명심
으로 서로의 협력이 없었으니 실패했다. 라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진주대첩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의 전략을 무산시키고
왜적들을 완벽하게 제압한 전투이며 열세인 조선관군이 의병장들과
성안의 백성들까지 혼연일체가 되어 팀워크로 끝까지 진주성을
사수한 김시민 장군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전투 입니다.

팀워크는 여러 리더십 요소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21세기 글로벌
비지니스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일의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수 있는 리더의 덕목이 됩니다.

리더는 팀원들이 각자의 역량을 잘 발휘 할 수 있도록 리드하는
한편 팀원들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을 자신도 함께 한다는 자신감과
기꺼이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김시민 장군이1592년10월10일 왜적의 총탄에 맞아 죽으면서까지
진주성을 사수한 그런 의지를 보여 준 것은 참전한 팀원들로부터
신뢰를 받았으며 결과적으로 우리 조선관군팀이 승리하였습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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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이순신포럼CEO아카데미7기 개강식에 초대합니다.

진주성 대첩을 쓰면서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임진왜란의 진실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많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참 역사를 아는것, 일본 식민지사관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닌 바로
우리의 정통성을 찾는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지금 이순신인가?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께서 개강 기념
특강을 하십니다. 본인의 거북선 농법으로 크게 성공한 해남의
키위 농장의 사례 발표와 함께 지금 우리가 불확실성 시대에 겪고
있는 정치와 외교의 중요성에 대해서 임진왜란과 대비하여 강의를
하십니다. 많은 참석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 일시:2014. 10. 22(수) 오후 18시~
2. 장소 : 한국산업단지관리공단 서울지역본부 2층 회의실
(구로디지털단지역 3번출구, 이마트옆 건물)
3. 대상 : 이순신을 흠모하는 모든 사람
4. 신청 : (사)이순신포럼 사무국 02-2671-2528 / 010-2228-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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