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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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 그 후!
1597년 9월17일(甲辰). 맑다. 어외도(於外島 : 무안군
지도면(智島面))에 이르니 피난선이 무려 3백여 척이나
먼저 와 있었다. 우리 수군이 대승한 줄을 알고 서로
다투어 치하(致賀)하며 말(斗), 섬으로 양식들을 가지고
와서 군사들에게 주었다. 나주의 진사 임선(林瑄), 임환
(林懽), 임업(林業) 등이 찾아와서 만나보았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어외도는 울돌목에서 직선 거리로 40km 이상 되는 곳인데
17일에 도착 한 것을 보면 16일 전투가 끝난 직후 곧바로
움직였다는 것이 됩니다. 밤을 이용하여 이동한 것으로
보아 함대의 안전을 위한 것으로 사료 됩니다.
또한 전투에서 이긴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미리 사전계획을 마련해 놓은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8일에는 그냥 어외도에서 머물지만 19일에는 법성포 도착,
20일에는 위도, 21일에는 고군산도까지 서해안의 대장정을...
그리고 나서야 23일에 승첩 장계의 초안을 수정하는 일을
하였으니 말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눈 앞의 전투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뒷마무리까지 그리고 조선수군의 재건을 위한
일까지 염두에 두신 것 같습니다.
명량대첩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의 일들을 침착하게
진행하시는 모습을 보이며 백성들에게 조선수군의 건재함을
알리고 우리는 다시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왜적들이 서해안을 돌아 북진 할 수 없도록 견제하면서
하루빨리 조선수군의 재건을 이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하며 고군산도까지 올라간 이순신의 차기 전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정말 위대한 리더십이 빛나는 순간 입니다.
흔히 우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차선책을 강구하고
플랜 B를 준비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겼을 경우에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 인가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 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승리한 것에만 만족하는 것이지요.
지금 아무리 위기라고 해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것 못지 않게 뒷마무리까지
배려하는 고수의 전략으로 맡고있는 프로젝트를 완성시키는
용기있고 여유로운 리더의 모습을 주어야 하겠습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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