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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을 계획을 세웠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10-31

조회 20,948



집 지을 계획을 세웠다.

1597년10월29일(丙戌).  맑다.  새벽2시경에 출발
하여 목포로 향하였다.  비와 우박이 섞여 내리고
동풍이 약간 불었다.  목포에 이르렀다가 다시 옮겨
보화도(寶花島 : 지금의 高下島)에 대었더니 서북풍을
막음직하고 배를 감추기에 아주 적합하였다.  육지로
올라가서 섬 안을 돌아보니 지형이 대단히 좋으므로
진영을 이곳에 설치하기 위하여 집 지을 계획을 세웠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명량대첩이후 이순신은 서해안의 고군산도까지 올라
가면서 첫째 조선수군의 건재를 알리고 둘째 조선수군의
재건을 위하여 겨울을 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찾는데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하도는 영산강 하구에 가로놓여 있는 섬으로 한양과
영남으로
연결 되는 길목에 있는 지형 입니다. 조선수군
재건의 본격적인
준비를 한 곳으로 우리바다의 제해권을
되찾기 위한 전략을 세운 곳이지요.

"모든 전략은 지정학적 전략이다".  콜린 S. 그레이 교수는
지적했으며  "영국 해군이 자국의 지리적 위치 덕분에 북해의
출구들을 지배하는 한 북해에서 어떤 것도 성공할 수 없었다. 
해군 전략의 핵심은 전함의 수가 아니라 지리였다."는 발표가
있습니다.  -  전쟁사 전문가 휴 스트라찬 교수 2001  -  에서 발췌

13척의 판옥선으로 330여 왜선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울돌목의 지리적 이점이 명량대첩의 전략을 한마디로 표현
하고 있습니다.  지리는 전략의 기본 요소라는 것이지요.

이순신이 고하도를 수군기지로 지정한 것은 조선의 함대가
겨울을 나면서 차기 해전에 대한 군량과 군수물자를 확보
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고 재건을 위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이순신을 비롯한 부하장병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판옥선은
40척이나 건조하였으며 다음해 2월 고금도로 진을 옮길때
에는 수군 장병 8,000명과 판옥선
53척을 이끌고 이동했습니다.

한산대첩이나 노량대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순신의 전략은
모두 지정학적 전략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형지물을 잘 이용 한다는 것은 적들보다 한 수 위인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군사적인 것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위한 믿음과
신뢰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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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 주사 안 맞으신 회원님들은 미리 미리 맞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순신의 위기극복의 리더십, 그것은 13척의 판옥선으로 왜적을
물리친 명량대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필사즉생의 정신으로
말입니다.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역사에서 배우는 위기극복의 리더십으로 우리 모두 함께 힘을
냅시다. 더 나은 밝은 미래, 희망의 집을 지을 계획을 세웁시다.

1.  일시  :  2016.  11. 18(금) ~ 19(토) 1박2일
2.  장소  :  진도, 해남, 고하도, 울돌목 등지
3.  참가자  :  이순신을 흠모하는 모든이
4.  참가비  :  300,000원/성인  청소년 무료
5.  신청/접수  :  (사)이순신포럼 사무국 02-2671-2528/010-2228-1151




89차 - 목포
진도 명량대첩 일정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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