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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늘 제자리에 있었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11-13

조회 20,353



이순신은 늘 제자리에 있었다.!!

(옥포해전)
7일 새벽 다 같이 출발하여 적선들이 정박해 있는
천성(天城)과 가덕(加德)을 향해 갔는데 정오에
옥포 앞바다에 이르니 척후장(斥候將)인 사도 첨사
김완(金浣), 여도 권관 김인영(金仁英) 등이 신기전
(神機箭)을 쏘아 올려 변고를 알리므로 적선이 있는
줄 알고 다시금 여러 장수들에게 신칙하기를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산같이 정중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
고 지시한 후 그 포구 앞바다로 줄지어 나란히 들어가
보니, 왜선 50여 척이 옥포 선창에 나뉘어 정박해
있었습니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임진왜란 발발 후 처음으로 출전하는 옥포해전에서
부하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첫번째 내린 지시 입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위엄이
서린 추상같은 명령 입니다.

1592년 5월3일 전라좌수영 여수에서는 옥포해전 출전을
앞두고 왜적이 무서워서 도망간 수군 황옥천을 참수하여
내어걸며 조선수군의 제자리를 알려 줍니다. 그리고 군령
으로 엄하게 바로 잡고 출발 합니다.

유성룡 대감이 이조판서로 있는 같은 덕수이씨 집안인
율곡 이이를 만나 보라고 권했을 때도, 병조판서로 있던
김귀영이 자기 서녀를 공의 첩으로 주려고 하였을 때도,
정승 유전이 공에게 화살통을 달라고 하였을때도 시종일관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명확하게 밝히며 거절하였습니다.

전쟁 중에도 당파싸움으로 혈안이 되어 있는 조정 대신들
속에서도, 왜적 요시라의 간계에 넘어가 통제사 이순신을
파직 시키고 백의종군을 명한 선조 임금의 질시 속에서도,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의 조선수군의 궤멸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또한 어머니와 아들을 잃어버린 지극한 슬픔속
에서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충효정신으로 무장된
구국의 일념으로 자신의 자리에 의연하게 서 있었습니다.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며 필사즉생의 정신을 
불태운 명량대첩이며, "이 원수들을 쳐 없앨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의 기도는 끝내 "나의 죽음을
알리지마라." 로 마지막 순국의 전투 노량해전에서 보듯이
언제나 이순신은 자기가 서 있어야 할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지금 불확실한 시대에 직면한 우리는 특히 요즈음 같은  
혼돈과 무질서가 혼재 되어 있는 사회에서의 생존전략은
우리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서 자신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일에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나의 자리는 어디일까?  각자 나름대로 아름다운 자리가
있을 것 입니다.  아버지의 자리, 어머니의 자리, 자식의 자리,
리더의 자리, 팔로워의 자리 등 제자리에서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산같이 무겁게 자기의 역활을 성실하게 실천한다면
밝은 사회, 희망찬 미래는 우리에게 값지고 빛나는 별처럼
도래할 것 입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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