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16-11-27
20,865
이순신과 함께 한 승려들!!
노량의 대승첩이 있은 뒤에 전쟁은 끝이 났다.
전라도 지역 내에 있는 각 사찰의 승려들이
이순신의 영혼을 위하여 제를 시행하지 아니한
절이 없었는데 그 중에서도 자운이라 하는 화상은
일찍부터 승장이 되어 순신의 진중에 오래 있었던
승려이었다. 순신이 죽은 뒤에 각 방면으로 돌아
다니며 흰 쌀 6백 석을 모아가지고 노량에 와서
수륙제를 성대히 시행하였는데 삼혜, 의능, 처영,
덕수의 무리들이 모여 들어 경을 외고 염불을
하였다. 이 자운 화상은 순천 왜교에다 초묘를
짓고 순신의 유상을 봉안하고 평생 경을 외웠다고
한다. 또 옥형이라는 중은 순신의 군중에 오래
있어서 그 인격을 숭배하였다. 순신이 죽은 뒤에
여수 충민사로 와서 자기 일생동안 사당을 쓸고
닦았다고 한다.
- 회정 김기환 저 [이순신세가] - 에서 발췌
이순신 장군을 모신 최초의 사당 여수 충민사(사당) 옆에
석천사(사찰)가 있습니다. 또한 해남 대흥사(사찰) 경내에
서산대사를 모신 표충사(사당)가 있고, 밀양 표충사(사찰)의
경내에는 사명대사를 모신 표충사(사당)가 있습니다.
어디가 사찰이고 어디까지가 사당인지 구분이 안되는
곳으로 이순신 장군의 위업을 기리고 영혼을 위로하는
일을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쟁을 치른 승려들이 일생을
바쳐 경을 읽고 사당을 쓸고 닦았다는 기록입니다.
또한 임진왜란때 왜적에 맞서 목탁을 내던지고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쟁터로 나갔던 승려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서 사찰 안에 사당을 짓고 모신것은 유림과 불교가
서로 구분하지 않고 함께 하는 평화 공존의 장이었습니다.
종교가 달라도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왜적을 물리치는
일에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으며 장군이 돌아가셨어도
몸과 마음을 다하여 영혼을 위로하는 일에 일생을 바치는
것을 보고 승려들의 나라사랑 리더십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평소에 어떻게 하셨길래 승려들까지도
감복하여 자진해서 전쟁터에 나가고 승장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하였을까요? 이순신 장군은 유림인데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소양인 충(忠)과 효(孝)를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없이 따뜻한 배려로 부하사랑을
실천하지 않으셨나 생각합니다. 승유억불정책을 쓰는
조선에서 무시당하는 승려들에게도 다름없는 따뜻한
마음을 아낌없이 주시지 않으셨을까 하고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국제정세의 역류에
흔들리고, 세계경제의 흐름에 흔들리고, 홍수처럼 밀려오는
정보에 흔들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감싸안는
포용력 있는 리더십이 요구되는 새로운 때 입니다.
내 마음의 중심이 바로 서 있지 않으면 이리저리 흔들리게
마련이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없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유림과 불교가 관, 민, 모두 합심하여 화합된 모습으로 왜적을
물리쳤듯이 우리도 용기를 내어 최선을 다하여 이 어려운
난국을 헤쳐 나가도록 지혜를 모읍시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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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16년 따뜻한 배려의 손길,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한 자선산행에 초대합니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2016년도 달력을 한장 남겨 놓고 있습니다. 년초에
세우셨던 계획들은 마무리 잘 하고 계실 줄 믿고 있습니다.
오는 12월 첫번째 토요일인 12월3일, 수원 광교산으로 자선 산행을 떠납니다.
광교산은 임진왜란때는 용인전투로, 병자호란때는 광교산 전투로 실패를
거듭한 가슴아픈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실패의 리더십에서 주는 교훈을
다시금 살펴보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성찰해 보는
귀한 시간을 마련 하였습니다. 부디 참석 하시어 함께 하는 좋은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정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