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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대로에서 만난 벽제관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12-03

조회 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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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관 전투!!

이 제독이 파주에 진군하여 적군과 벽제관(碧蹄館)
남쪽에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했고, 개성으로 돌아와
진을 쳤다. (중략)
날이 저물자 제독은 파주로 돌아와서 패전한 것을
숨기고 있었으나 신기(神氣)가 몹시 저상(沮傷)했으며
그날 밤에 가정(家丁)의 친신(親信)한 사람들이 전사한
것을 슬퍼하여 통곡까지 했다. (후략)

- 서애 유성룡 지음, 이재호 옮김 [징비록] - 에서 발췌

어제 벽제관 전투가 있었던 삼송역에서 여석령으로 벽제관지
까지 고양시 덕양구 일대의 임진왜란 전적지를 걸었습니다.
해마다 12월의 첫번째 토요일에 개최하는 불우이웃돕기 자선
행사로 참가비는 후원금으로 전액 기부하는 걷기 명상입니다.
 
선조 임금께서 의주로 몽진을 가셨던 바로 그 길입니다. 
왜적들이 갑자기 쳐들어왔다고는 하나 그만큼 우리가 국방을
소홀히 했기에 임금께서 수모와 능욕을 당하시며 걸어가셨던
길입니다.  그 날따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하루종일
굶으시면서 걸어가셨죠. 왜 이렇게 피난갈 수 밖에 없었을까?   

명나라 장수 이여송에게서도 배웁니다. 지원군이라는 오만함
에서 오는 교만함과 적을 얕보는 태도에서 오는 정보수집
능력의 태만함 등에서 전쟁을 교착상태에 빠트린 실패의
리더십을 배웁니다.

조선을 방패로 삼아 자국의 전쟁피해를 최소화 하려는
명나라의 속셈을 온 몸으로 막아 내야했던 유성룡 대감을
비롯한 충신들의 나라사랑 언행에서 지금도 통용되는
협상의 리더십을 배웁니다.

이여송이 조선으로 파병 되면서 전시작전권도 행사할 수
없었던 조선은 또 하나의 다른 적을 맞이하였습니다.
왜적보다 더 무서운 외교전쟁 속에서도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신 순국선열들의 피땀어린 희생의 노고에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걷고 또 걸었습니다.

징비록을 남기시면서까지 국가의 안보를 경계 하셨건만
300년후에 나라를 다시 그 왜적에게 빼앗긴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여 다시는 이러한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명나라 사신들이 오가던 길, 선조임금이 피난 가던 길,
대륙의 문명을 받아들이던 길, 그러나 그 길은 두번 다시
치욕의 길을 만들면 안된다고 소리없이 외치고 있었습니다.

아시아의 리더로서 세계로 뻗어 나가는 길, 수출로 이어지는
한류의 길, 분단된 조국을 평화 통일로 이끄는 번영의 길로
쭉쭉 뻗어나가기를 바라는 길 입니다. 아시아 최정상의 그
길로 나아가라고 우리에게 당부하고 있었습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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