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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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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 전투의 일본측 기록
일본력 4월 27일(조선력 음력 4월 28일) 맑음.
인각(오전 3~5시)에 문경을 출발, 오각(오전 11시
~ 오후1시)에 충주 도착하였다. 충주부 북쪽
송산에 조선군 신립 장군이 수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집결하였다. 조선군 진영에 제일 먼저
공격한 것은 대마도의 종의지(소 요시도시)의
병력이었다. 곧이어 고니시 유키나가의 병력이
공격하여 참수 3천급, 포로 수백명, 조선군 대장
신립은 전사했다. - 서정일기(西征日記) 중에서 -
- 윤인식 글 [역사추적 임진왜란] - 에서 발췌
어제 이파리 124차 문경새재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패전을 한 탄금대 전투지까지 조령을
넘어 가면서 지금의 우리를 재성찰해 보았습니다.
오전에는 따뜻한 봄날씨였었는데 오후부터 제2관문
조곡관을 지나면서 함박눈이 쏟아졌습니다. 제3관문
앞에서는 눈앞을 가리어 더이상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사진 참조)
이번에는 청소년들도 많이 참석했는데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았던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할 이유에
대한 진지한 시간들이 길위의 인문학으로 이어졌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임진왜란을 잘 알려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위의 서정일기(西征日記)는 일본 교토의 묘심사의 승려로
조선에 1577년, 1587년 두차례나 조선사절단으로 다녀간
일본의 종군승 덴케이가 기록한 것으로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軍과 소 요시도시軍의 동향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 입니다.
신립은 장수라는 권위로 적이 가까이 왔다는 급한 첩보를
제공하는 백성들도 무시하고 조선군의 수가 일본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인만큼 조령의 협곡을 이용하여 기습작전을
펼치자는 종사관 김여물의 직언도 물리치고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조령도 막지 못하고 길을 내어준 탄금대 전투의
격전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정책도 전략도 중요하지만 현장에 있는 그 시간에
장수의 상황 판단이 어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전투에 이길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열어 놓고 정보를
취합하여 분석하는 훈련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금 배웠습니다.
문경새재의 관문들은 임진왜란 후에 세워졌고 관방의
역활을 하였다고 하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었습니다.
과거를 보러가는 길, 장원 급제를 하고 기쁜소식을
전하러 내려오는 길, 상인들의 봇짐이 올라가는 길,
관찰사가 부임을 받고 내려오는 길, 이 평화스러운
길을 정명가도를 외치며 조선을 침략한 왜적들에게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내어 주었던 길.....
앞으로의 우리는 이래서는 안되겠지요. 특히 우리의
후손들이 가슴을 활짝 펴고 다닐 이 길은 글로벌 세계로
나아가는 길, 경쟁력 있는 나의 첨단 기술과 서비스
그리고 한류 상품과 시장이 열리는 길, 그래서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어느 누구도 무혈입성 하지 못하도록
당차게 막아서며 연전연승으로 이기는 길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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