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1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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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를 받아갔다....
1594년 10월 28일(壬申). 맑다. 공문을 적어 보냈다.
금갑도(金甲島 : 李廷彪)와 이진(梨津) 권관이 와서
보았다. 식후에 전라우도 우후(李廷忠)와 경상우도
우후(李義得)가 와서 목화를 받아갔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전쟁물자를 자급자족해야 했던 이순신의 군대는
둔전을 일구어 군량미를 보급했던 것처럼 목화
재배까지 하며 군사들의 옷가지도 챙겨야했습니다.
그 당시 면포는 화폐로 계산되어 쓰일만큼 매우
중요한 재화였습니다. 세종 임금때에는 면직물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아주 중요한 생산품이었습니다.
일본은 고려말기 1366년 문익점에 의해서 목화 재배에
성공한 조선보다 200여년 이상이나 늦은 1594년에
목화 재배에 성공했습니다. 조총의 심지로 면직물이
얼마나 필요한 전쟁물자였겠습니까?
목화뿐만 아니라 인쇄술의 활자, 도자기 기술 등 우리의
첨단 기술은 모두 앗아갔으며 우리의 중요한 수출품을
차근차근 자기나라에 맞는 국산화로 대체해 나갔습니다.
임진왜란은 일본에게 있어서 산업혁명의 기회였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목화재배 식민지가 되어 일본으로
면직물들이 대량으로 수탈되어 나갔습니다. 영산강
하구에 있는 고하도가 목화재배지이며 목포는 일본으로
면포를 실어나르는 항구가 되었습니다.
이순신이 남겨놓은 난중일기에서 우리는 16세기의
동아시아 경제 상황을 읽을 수 있으며 지금과 비슷한
현실이 4~500년전에도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4차산업혁명의 한가운데에 있는 우리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글로벌 시장의 판세를 읽고
첨단기술 개발에 매진하여 경쟁력 있는 수출품으로
대체해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임진왜란을 통해 배우는 우리의 반성으로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한 수 위를 보는 대국을 치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쓸데없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할
시간이 없어보입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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