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0-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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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평양성 전투 - 명나라 군사의 패배
선조실록 1592. 7. 20 (丁丑).
.....이보다 앞서 부총병 조승훈(祖承訓), 유격
장군 사유(史儒)와 왕수관(王守官) 등이 진군
하여 평양에 이르렀다. 17일 첫새벽에 평양성
가까이 밀고 나가 성에 화포를 쏘아 관문을
깨트린 다음 여러 길로 쳐들어갔다. 용맹스럽게
날뛰며 싸움을 지휘하였는데, 사유는 자신이
군사들의 앞장에 서서 마(馬) 천총과 장(張)
천총 두 사람과 함께 왜적의 머리 수십 개를
베었다. 그러나 사유와 마천총, 장천총은 적의
탄환에 맞아 죽고 모든 군사들은 물러나 흩어졌다.
조승훈(祖承訓)은 하루 동안에 빨리 달려 대정강
(大定江)까지 가서 전체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갔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임진왜란 발발 두 달만에 평양이 함락 되고 선조
임금이 의주로 피난을 떠나자, 명나라는 정말
왜적들의 길잡이가 되어 쳐들어 오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며 요동 부총병 조승훈을 먼저 내보냅니다.
그러나 조선의 심각한 전시 상황도 왜적들의 동태도
파악하지 않은채 무조건 평양성 안으로 쳐들어 가서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3,000명의 부하들을 거의 다 잃고 천신만고 끝에 요동
으로 돌아간 명나라 부총병 조승훈은 평양성에서의
패배를 거짓 보고로 조선의 조정은 우리의 실정을 해명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조승훈 군대의 패배는 어쩌면 당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입니다. 조선의 군대는 물론이거니와 왜적도
무시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무작정 공격하는 조승훈의
실책으로 그 날 평양성은 함락 되었습니다.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던 조선의 어려움을 진정으로
돕고 함께 연합전선을 펴야 하거늘 자기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며 교만하게도 대동강의 지리도 잘 모르면서
날뛰었던 명나라 군사들을 보면서 역사에서 배웁니다.
장수는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절대로 적을 무시하고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조선의 장수들과 전략회의를
열고 전술을 짜고 연합으로 평양성을 쳐들어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리더로서의 본분을 잊지않게 해
주는 첫번째 평양성 전투 패배의 교훈 입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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