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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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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성응지(成應祉)가 죽었다.
1594년 8월 29일 (甲戌). 맑으나 북풍이 크게
불었다. 공문을 적어 보냈다. 남해 현감(玄楫)이
들어왔다. 의병장 성응지(成應祉)가 죽었다.
슬프다. 슬프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이순신 장군 막하에는 조선수군뿐만 아니라 의승군
들도 있었습니다. 국난을 당하여 임금은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난을 갔지만 백성들은 의병들을
시작으로 승병들도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의병장 곽재우를 비롯하여 김덕령, 고경명, 정인홍
등 북상하는 왜적들의 뒤를 끊어 내며 종횡무진으로
싸워 이겼습니다. 또한 승병들도 서산대사를 중심
으로 사명대사, 영규대사, 처영대사 등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의병들과 힘을 합하여 싸웠습니다.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에서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승려들을 무시하고 천민으로 취급하였으나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여수 흥국사를 본산으로 활동한
의승군들의 헌신과 봉사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또한 이순신 장군께서도 의병 장수들에게 상 주기를
청하는 장계도 올려서 칭찬해 주기를 청했습니다.
"수군으로 자원하여 들어온 의병장 순천 교생 성응지와
승장(僧將) 수인(守仁), 의능(義能) 등이 이러한 난리
때에 제 몸 편안하기만을 생각하지 않고 의기(義氣)를
발휘하여 군병들을 모집하여 각각 300여 명씩 거느리고
나라의 수치를 씻으려고 하니 참으로 가상한 일입니다."
"바다 위에 진을 치고 있은지 2년 동안 스스로 군량을
준비하여 이곳 저곳 나누어 대어주면서 간신히 양식을
이어대는 그 고생스런 모습은 관군보다 곱절이나 더한데,
지금까지도 고생하는 것을 꺼리지 아니하고 더욱 더
부지런할 따름입니다. " (1594년3월10일 장계)
이러한 의병과 승병들에게 상을 내리기는커녕 전쟁이
끝나고 공신 책봉에 단 한사람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으며 우리의 기억조차도 희미해지는 역사로
남았습니다. 선조 임금의 논공행상이 잘못 되었음을
후세 사람들이 밝혀내어 알게 되었습니다.
조정의 어떠한 지원도 없이 스스로 종교를 초월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선비들은 붓을 버리고, 스님
들은 목탁을 버리고 백성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왜적들을 물리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요즈음 코로나19 사태로 하루 하루 힘들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고통받는 사람들과 치료를 위해서 헌신하는 의료진
들과 봉사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전대미문의 전염병 바이러스를 우리 모두 함께 퇴치
해야 할 방역 행동은 전쟁 때의 의병이나 승병들과
마찬가지라고 생각 합니다. 종교를 떠나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상대방을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따뜻한
배려심이 절실히 요구되는 우리의 공동선을 위하여
코로나19 방역에 힘을 합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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