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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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제(纛祭)를 지내기 위해 재계에 들어가게 하였다.
1594년 9월 8일 (癸未). 맑다. 장흥(黃世得)으로
헌관(獻官)을 삼고 흥양(裵興立)으로 전사(典祀)를
삼아 둑제(纛祭)를 지내기 위해 재계에 들어가게
하였다. 김 첨지(金敬老)가 왔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둑제는 군신을 상징하는 깃발에 지내는 제사의식
으로 고대부터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둑에
제사를 지낸데서 유래했는데 승리의 신(神)인 치우의
머리를 형상화한 둑기는 소의 꼬리나 검은 비단으로
만들어 "대조기" 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중에는 이순신 장군을 제관으로 새벽
1 ~ 3시경에 시행 했는데 부하장령들이 헌관이나
집사관이 되어 왜적을 무찌르게 해 달라는
출사제문(出師祭文)을 지어 읽었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로서의 마음 가짐은 부하들을
사랑하고 백성들의 안위를 염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상의 군무에서도 정성드려 부하장령들과
함께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제사를 지내는 등
한시도 쉬지 않고 오로지 나라를 구하는 일에 전념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난중일기에 둑제를 지낸 것은 세 번 나오는데 1593년
2월 5일에는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둑제를 시행
하였습니다. 이렇게 리더가 강인한 의지력으로 전심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부하들은 이순신 장군을
신뢰하며 굳게 단결 하였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삶의 자리가 위태로운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위정자들은 재계하고 반드시 극복해
낼 수 있다는 솔선수범을 보여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더우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배려를 하루빨리 시행
하시는 것이 오늘날의 둑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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