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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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독부를 방문하여 위로연을 베풀고.....
1598년 11월 8일 (乙丑). 도독부를 방문하여
위로연을 베풀고 어두워서 돌아왔다. 조금 있다가
도독(陳璘)이 보자고 청하므로 곧 갔더니, 순천
왜교(倭橋 : 승주군 해룡면 신성리)의 적들이 이달
초 10일 사이에 진을 철수하여 달아나려 한다는
기별이 육지로부터 통문으로 왔으니, 급히 진군
하여 적들의 돌아가는 길을 끊어 막자고 하였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노량해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돌아가시 전 10일전에
쓰신 난중일기 입니다. 오로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때로는 자신을 낮추어 와신상담하는 마음으로 진린을
접대한 일종의 협상의 기술일 수도 있는 위로연 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포용의 리더십이 발휘된 대표적인 사례
입니다. 진린은 노량해전의 전공으로 광동백(廣東伯)에
봉해집니다. 진린은 이순신보다 두 살이 더 많으며 광동성
사오관 출신 입니다.
처음에는 이순신과 불화가 있었으나 이순신이 진린에게
수급을 양보 하는 등 전공을 세우도록 도움을 주고 구국의
일념으로 시종일관 전진하는 이순신의 인격에 감복한
진린은 진정으로 이순신을 존경하게 되었고 수군의
작전권도 돌려주며 이순신을 도왔습니다.
이후 명나라 조정에 이순신의 전공을 상세하게 보고하여
명황제로부터 이순신에게 8가지 선물들을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진린은 전란이 끝난 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그의 손자 진영소(陳泳素)는 명나라가 멸망
하자 조선으로 돌아와 고금도에 살다가 지금은 해남군
해남읍에 정착하여 광동 진씨(廣東 陳氏)의 뿌리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포용은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 입니다. 중국의 전국책
(戰國策) 진책편에는 사람을 가리지 말고 포용하라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고 (太山不讓土壤)
큰 강과 바다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河海不擇細流)
이순신 장군이 명나라 장수 진린 도독을 포용한것은
조선의 입장과 명나라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과 조선과
명나라의 이해관계를 잘 이해하고 명쾌하게 정리한
처신이라고 생각 합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현장
에서의 상황판단을 제대로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나라의 장수라 하더라도 이순신 장군이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하므로서 불목하지 않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낸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처세를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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