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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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왜 사야가 김충선 이야기...
1595년11월30일(戊戌). 맑다. 남해군에 항복해온
왜인 야여문(也汝文), 신시노(信是老) 등이 왔다.
경상수사가 와서 만나보고 체찰사에게 바칠 전세
(田稅) 군량 30섬을 받아갔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임진왜란 때에 조선에 투항한 왜군들을 항왜(降倭)
라고 하며 그 당시에 약 1만명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조선의 조정은 물론이고 군사작전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여여문(呂汝文), 사야가(金忠善)
등을 들 수 있으며 명량대첩에서 항왜 준사가 이순신
에게 바다에 빠진 적장을 가르켜 주어 승기를 잡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도 인상깊은 장면 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일본에 투항하거나 협력한 순왜(順倭)
들도 있었는데 개전 초기에 임해군과 순화군을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겨준 함경도 회령의 국경인, 김수량
같은 사람입니다.
사무라이 사야가(沙也加)는 2번대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으로 참전 하였으나 종군 7일만에 자신이
지휘하는 3천명의 조총부대를 이끌고 경상좌병사
박진(朴晉)에게 투항하였습니다.
1592년 귀화한 뒤 조총 제작기술을 전수하고
임진왜란, 이괄의 난, 병자호란 때 혁혁한 공을
세워 삼난공신(三亂功臣)으로 불리기까지 한
사야가(沙也加) 는 선조 임금께서 성과 이름을
하사 하시어 조선의 무장 김해 김씨 김충선(金忠善)
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전쟁이 끝난후 진주목사 장춘점의 딸과 결혼하여
사성 김해 김씨 가문을 일으켰으며 지금은 대구시
달성군 우륵동의 녹동서원에 배향되어 매년 3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그를 배신자이자 매국노라고 폄하하고
존재조차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으나 그의 저서
[모하당문집]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일본의
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기행문을 통해 재조명 되어
현재는 한일 양국의 우호를 상징하는 역사문화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항왜이든 순왜이든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국가나 사회에 대한 불평,
불만이 있다는 점 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는 대의를 비젼으로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선 침략은 천도(天道)에 어긋났다고
하여 당시 항왜(降倭)들이 많았습니다.
우리 회사는 어떻습니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미래
지향적인 비젼 제시를 하셨는지 조직의 불평불만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으셨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바로잡아 주고 선순환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역활이 리더로써의 책무가
아닌가 생각 합니다. 코로나로 인한 불확실한 시대에
내일을 품어 안을 수 있는 긍정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최선의 노력이 필요할 때 입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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