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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출정 준비....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0-12-08

조회 16,400



명나라의 출정 준비....

병부상서 석성에게 보고하는 서신(1592. 12. 07)
(前略)
요동 낭중(郎中) 왕응림(王應霖)에게서 보고를
받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왜적
대비용 군량과 사료를 헤아려보니 10만의 병마가
두 달 동안 충분히 쓸 수 있습니다.  또 오랑캐
방어용 본색(本色)으로 저장한 9만석을 왜적 방어
용도로 대기하겠습니다.  또한 지금 만력 21년치
둔량(屯糧)과 염량(鹽糧)을 징수하겠습니다. (中略)
분수도(分守道) 형주준(荊州俊)은 3만 석을 구매
완료하였고, 분순도(分巡道) 풍시태(馮時泰)는
1만5천석을 구매 완료하였으며.... (中略)
전체적으로 계산하면 왜적을 정벌할 병마는 4만이
안되니 길게 헤아려서 계산하면 충분히 1년 남짓
사용할 수 있습니다.  (後略)

- 승응창의 경략복국요편 역주 [명나라의 임진전쟁] - 에서 발췌

경략 송응창이 병부상서 석성에게 보내는 이
보고서는 명나라가 임진왜란을 어떻게 이해하고
조선을 도우려고 무엇을 하였는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송응창의 경략복국요편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1592년 8월부터 1593년 12월까지 경략으로 재임
하면서 그동안의 상주문, 공문, 명령서, 편지등을
바탕으로 명나라 군대의 최고 지휘관으로서의
전쟁 수행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명나라 시각에서
볼 수 있어 더욱 새로웠습니다.

송응창은 평양과 한양을 수복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벽제관 전투 패전 후 왜적들과의 화의를 추진하였고,
이 과정에서 선조를 비롯한 조선의 관료들과 명나라
조정의 주전파(主戰派) 및 감찰을 담당한 과도관
(科道官)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경략은 명나라 13대 신종 만력제가 임진왜란 당시
명군의 최고 지휘관에게 내린 직책인데 송응창은
자국의 울타리격인 조선에서 일본과 전쟁을 치르기로
결심하였지만 정작 조선 파병을 위한 장수와 군사를
확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출병한 과정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중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경략의 직책을 부여받은
승응창을 필두로 고양겸(顧養謙)과 손광(孫鑛),
형개 등 모두 4명의 경략이 임진왜란, 정유재란
시기 임명되었으며, 왜적을 방어하는데 필요한 
제반 업무를 총괄하는 권한을 가졌던  경략에는
고위 문관(文官)이 발탁되었으며, 명대 지방의
최고 장관이었던 총독(總督)과는 동등하고 총병
(總兵) 순무(巡撫)이하에게는명령을 내릴 수
있는 높은 지위였습니다.

세계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요동치고
있습니다.  동맹을 강조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그룹핑을 하는 각국의 지도자들의 움직임이 바쁘게
돌아가며 예상치 못한 의사결정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와 연대하고 돕는다는 것은 400여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도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미래를 위한 방향과 전략은 어떻게
세워야 할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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