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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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충청절도사로 전보되다.
선조수정실록 (1594년 12월)
경상우수사 원균을 충청절도사(忠淸節度使)
로 임명하였다. 원균이 이순신의 아래에 있는
장수가 된것을 부끄럽게 여겨서 그의 지휘를
받지 않았으므로 이순신이 여러 번 글을 올려
스스로 사임하려고 하였다. 조정에서는 원수
(권율)에게 원균의 공로와 죄를 조사하게 하였더니,
원균은 더욱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는데, 한마디
한마디가 다 더럽기 짝이 없었다. (後略)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해야 하는 전쟁 중에
적을 눈앞에 두고 최전선에서 일어난 수군 장수들의
반목과 갈등 입니다. 결국 참다못한 이순신은 삼도
수군통제사의 사직서를 올리고, 원균은 충청병사로
전근 가는 장면 입니다.
임진왜란 초기부터 불거진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은
1597년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이 조선수군을 궤멸
시키고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순신을 통제사로 임명했으면 나이도 많고 군의
선배인 원균을 다른 자리로 이동 발령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선조
임금은 두 사람을 화해 시키기 위한 노력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왕권 유지의 집권계략에 이용한 것
같아 비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순신은 외부의 적(왜적)과도 싸웠지만 내부의
적(원균, 선조, 조정의 대신들)그리고 명나라
지원군들과도 싸웠습니다. 이것은 모두 국가의
이해관계에서 오는 갈등이며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전쟁터의 적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 " ... 그저 때를 못만난
것을 한탄할 따름이다." 라고만 적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정직하게
보고하고, 군사를 바르게 운영하며,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전쟁에 승리하는 것으로 최선을 다
하셨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사회적인 갈등과도
무관하지 않는 대목 입니다. 모두가 힘든 이때에
일치단결하여 싸워야 하는데 부하들의 갈등으로
임금의 리더십에 심한 타격을 입은 선조임금께서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는 나처럼 하지말고 사심(私心)
없이 사심(邪心)없이 제대로 하라는 메세지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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