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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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들어온 군문 형개(邢玠)를 맞이하는 선조!
선조실록 1597. 11. 29.(丙辰)
임금이 홍제원에 나가 군문(軍門) 형개(邢玠 :
이름은 邢道, 호는 崑田)를 맞이 하였다.
선조 : (前略)..... 대인께서 소국의 일로 눈바람을
무릅쓰고 먼 길에 오느라 수고를 하셨는데,
지나오는 고장들이 파괴되어 제대로 접대를
하지 못하여 황송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형개 : 속국이 적들의 침략을 당하였을 때 군사와
군량을 크게 동원하여 구제해 주는 것은
황제의 큰 은덕이고, 황제의 지시를 받고
머나먼 곳에 구원하러 온 것은 신하의 직분인데
무슨 수고랄 게 있습니까? 일찍이 병부에서
귀국이 형체조차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는
말을 듣고 여러장수들에게 지시하여 침해하는
일이 없게 하였는데, 이번에 와보니 과연 듣던
바와 같습니다.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습니다.
오는 도중에 별로 잘못한 일이 없었습니다.
(後略)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군문 형개는 정유재란 때 조선에 나왔던 명 군부를
총괄한 경략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고국에 돌아가
[경략어왜주의]經略御倭奏議 를 남겼습니다.
명군 수뇌부에서 일어난 제반 군무를 처리하고,
또한 중요 사안을 수시로 주본을 만들어 명 조정에
올려 보냈는데 이 주문들을 모아 묶은 책자입니다.
임진왜란 중국사료 연구(박현규 지음)에서 발췌한
형개의 경략어왜주의는 명나라 입장에서 조선을
어떻게 구원하려했는지의 소상한 내용이 담겨 있어
명나라 참전 과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 입니다.
그동안 평양성 탈환의 명나라 장수 이여송 제독이나
노량해전에 참전한 진린 도독 등은 잘 알고 있지만
송응창, 형개, 동일원, 양호, 양원, 마귀 등 명나라
장수와 참전 하면서 겪은 군량미 운송에 대한 애로
사항이나 왜적들과의 강화협상을 결렬시켜 정유
재란을 불러 일으킨 유격 심유경을 체포한 이유와
처리 과정 등은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선조 임금은 명나라 사신뿐만 아니라 장수들에게도
극진한 대접을 하며 예물을 바쳤는데 특히 군문
형개는 "귀국의 형편을 보니 너무도 거덜이 나서
마음이 언짢아 받을 수가 없다며 정중하게 거절
하였답니다."
칠천량해전으로 조선수군이 궤멸하고 남해안의
제해권을 잃자 명 군부가 세운 방어대책이 결코
조선 방어가 아닌 자국 방어 대책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외국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도 자국의 경제, 외교, 국방, 안보 등 어느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명나라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명나라와의 협력을 통해서 지원을 받는 연합의
의미를 다시한 번 되새겨봅니다. 전란이 끝난
후에 명 조정은 북경 궁궐 오문(午門)에서 생포한
일본군 장수급 61명을 바치고 태묘(太廟)와 교외에
보내어 승전을 고하는 의식을 펼쳤다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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