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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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안녕은 이순신 덕분이었다....
... (前略) ...마침내 1597년 정월부터 일본군은
진군을 시작하였다. 육군은 임진전쟁 못지않은
기세로 경상, 전라, 충청의 3도를 잠깐 사이에
점령하였다. 이때도 해운(海運)이 충분하지
않아서 양식을 현지에서 구해야 했다. 하지만
조선의 농토가 전쟁으로 몹시 황폐해져 도저히
그럴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수군이 반드시
서해안으로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육군은 충청도 직산 부근에서 행군을 중지하고
하릴없이 일본 수군이 조선 수군을 제압하고
서해안으로 진출하기를 백여 일 동안이나 기다렸다.
... (後略) ...
- 김혜경 옮김 [이순신 홀로 조선을 구하다] - 에서 발췌
위의 글은 1902년 [일본제국해상권력사강의] 제5장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원정 - 분로쿠 원년부터 게이초
2년까지 7년간을 옮긴 것으로 저자 오가사와라 나가나리는
메이지 시기 일본 해군을 대표하는 문필가였습니다.
일본 해군대학교 교관을 지내며 자신의 강의를 엮은
이 책의 제5장의 대부분은 이순신과 관계된 내용으로
일본 해군 장교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이순신을 神으로
받드는 이미지를 확립 하는데 중요한 역활을 하였습니다.
일본이 임진왜란에서 잘못된 원인을 수군의 패배에서
찾으며 조선의 징비록처럼 써내려간 반성문이 특이
합니다. 일본이 패배하게 된 이유를 연구한다면 참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첫째 일본 수군이 평소의 소양 훈련을 결여하고 있었던
점이다. 안타까운 것은 수군이 잘하고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평소의 훈련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오직
다수의 전선을 건조해 병사들을 실으면 곧바로 우세한
수군을 조직할 수 있다고 오해한 일이다.
둘째는 수군 총대장을 두지 않았던 일이다. 수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시 배가 싸우게 하는 것이지, 사람이
싸우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군대의 전권을
쥐고 일치된 움직임을 도모할 수 있는 총대장을 두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에 반해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싸움에 능할뿐 아니라 만사에 장군다운 그릇을
갖추고 있었다.
세번째는 상대의 조선술이 비교적 발달해 있던 것이다.
일본보다 우수했던 것은 명백하다. 기타 지세의 관찰과
해저 수심, 풍향, 조류 조사 등이 모두 상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 역시 패배의 한 원인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순신은 담대하고 활달함과 동시에 정밀하고 치밀한
수학적 두뇌를 지녔다. 그는 전선의 건조, 진법의 변화,
군사전략, 전술에 이르는 모든 부문을 자신의 뜻대로
개량해 성공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거제도에서는
지형을 이용하고 진도에서는 조류를 응용하는 등의
갖가지 뛰어난 계책을 시행하여 매번 승리하였다.
조선의 안녕은 이 사람의 힘 덕분이었다.
- 오가사와라 나가나리 -
429년 전의 일이건만 지금도 유효한 이순신의 리더십과
군사경영의 핵심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지금의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를 다시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여운을 남깁니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의 리더십을 점검하게 해줍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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