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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수군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1-02-01

조회 16,172



경상좌수군(慶尙左水軍)

선조수정실록 1592년 4월
(前略)
경상좌수사 박홍(朴弘)은 당장 성을 버리고 물러나
달아났다. 경주에 침입한 왜적은 군사를 나누어
서생포(西生浦)와 다대포(多大浦)를 함락시켰다.
다대포 첨사 윤흥신(尹興信)은 맞서 싸우다 죽었고,
연해안 여러 고을과 진(鎭)들, 보루들은 소문만
듣고도 무너졌다. (後略)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경상좌수군의 총 지휘관은 경상좌수사이며 그
본부는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 즉 경상좌수영입니다. 
경상좌수사 박홍이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가 버리는
바람에 경상좌수군은 초기에 붕괴되어 활동 내용이
거의 없으며 왜적의 침략에 가장 먼저 싸운 이들은
경상좌수군인 부산진과 다대포진 군사들이었습니다.

부산진 첨사 정발 순절, 다대포 첨사 윤흥신 순절,
이 두 수군진이 함락되면서 경상좌수군의 대부분은
왜적의 주둔처가 되거나 와해되었습니다. 
경상좌수영은 2관10포로 동래지역으로부터 동해안
북쪽 영해에 위치한 축산포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분포 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수군은 왜구의 침략에 대한 방비책으로,
전라좌.우도, 경상좌.우도, 충청도, 경기도 등 6개의
수영을 설치하여 그 휘하에 여러 수군진을 두고
있었는데  위의 내용은 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에서
임진왜란시기 수군진 조사 자료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임진왜란기 경상좌수군의 편제를 보면 2관은 울산군,
기장현, 10포는 부산포, 다대포, 서평포, 두모포, 서생포,
개운포, 감포, 포이포, 칠포, 축산포인데 이순신 장군의
전라좌수영 5관5포 보다 훨씬 큰 수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균 수사가 이끄는 경상우수영은 9관19포로
경상도에서 왜적을 물리치지 못한 것이 참으로 한스럽습니다.

경상좌수영의 수군 편제를 파악하기가 힘들지만 이순신
장군의 장계, 난중일기 그리고 선조실록 등을 통해
경상좌수군의 동향 및 편성을 알 수 있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임진왜란 발발시 경상좌수영은 제일 먼저 왜적을 맞받아
쳐서 제압을 해야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던 경상좌수영을 보며 통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맨 처음이 중요합니다.  특히 전쟁은 초전박살이 관건
아니겠습니까?  

코로나로 인하여 국제질서도 바뀌고 국제정서도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럴때 우리는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할까요?  경상좌수영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다시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메세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경상좌수군 이라면 어떻게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요?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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