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1-02-15
15,875
경세가 이순신!
1595년 11월 21일(乙丑). 맑다. 북풍이 종일
불었다. 새벽에 송희립을 내보내서 견내량의
적선들의 움직임을 알아보게 하였다. 오늘 저녁
청어 13,240두름을 곡식과 바꾸기 위해 이종호
(李宗浩)가 받아갔다. (한 두름은 20마리)
1595년 12월 4일(壬寅). 맑다. 순천의 제2선과
낙안의 제1선의 군사를 점검하고 내보냈으나
바람이 불순하여 떠나지 못하였다. 분(芬)과 해가
본영으로 갔다. 황득중(黃得重)과 오수(吳水) 등이
청어 7천여 마리를 싣고 왔으므로 헤아려서 김희방
(金希邦)의 무곡선에 넘겨주었다.
- 이순신의 [난중일기] - 에서 발췌
자체적으로 군비를 충당하기 위해 물고기를
잡고 둔전을 일구어 자급자족하는 삼도수군
통제영 한산도에서의 생활 입니다. 전쟁이
소강상태였지만 한산도에서는 긴장을 풀지
않고 끊임없이 준비하고 대비하였습니다.
냉엄한 현실을 잘 다루기 위해서라도 직접
무우씨를 심고 미역을 따고 메주를 쓰며,
조정의 지원도 없는 가난한 조선 수군이
막강한 일본군을 저지할 수 있었던 경제적
기반은 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신 이순신
장군의 땀과 노력, 지혜의 덕분이었습니다.
그 당시 상업이나 공업을 경시하는 사회 풍조
속에서도 구국의 일념으로 곡물과 물품의
거래로 군량미를 해결하며 육지와 바다에서
부지런히 생산한 물품들을 내지(內地)의
상인들과 교환하여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는,
해상에서의 전투보다 몇 배나 힘들었던
경제전쟁을 하셨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국난 앞에서 스스로 자립하지
않으면 왜적과 싸우기도 전에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타파에 대한 강력한 이순신 장군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경제를 잘 이해하고 군수
산업을 일으킨 경세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자립정신은 곧바로 부하장령들
에게도 전달되어 올바른 도덕규범에 대한 솔선
수범으로 나타났으며 조선수군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라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필사즉생의
의지로 23전 23승으로 화답하였습니다.
자립정신은 자신은 물론 남에게도 크게 도움이
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강인한 정신력으로 주위의
모든 이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매우 수준 높은
의식경영으로 긍정의 메시지 입니다.
지금 코로나로 인하여 살기 어렵고 힘든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죽기살기로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원칙도 없고 기본이 안되어
있는 것 같은 작금의 현실을 탓하기에 앞서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부지런히 해결책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 상책 입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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