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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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서울에 압송되어 하옥되다.
수군통제사 이순신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처음에 원균은 이순신이 와서 구원해 준
것을 은덕으로 여겨 서로 좋게 지냈는데,
얼마 후부터는 공로를 다투어 차츰 사이가
벌어졌다. 원균은 본래 성질이 음흉하고
간사한데가 또 안팍으로 많은 사람들과
작당하여 순신을 모함하기에 있는 힘을
다했다. 그는 언제나 말하기를, "순신이
처음에 오려고 하지 않았는데 내가 여러 번
청해서야 할 수 없이 와서 적을 이겼으니,
공로로 치자면 내가 으뜸가는 공을 차지해야
마땅하다." 고 하였다. (後略)
- 이재호 옮김 [유성룡의 징비록] - 에서 발췌
정유년 2월 26일에 한산도에서 포박하여 서울로
압송된 이순신은 3월 4일 하옥되었습니다.
3월 13일에 한 차례 이순신을 국문한 후, 선조는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정탁 대감의 신구차를
비롯하여 여러 대신들이 상소문을 올려 구명
운동을 전개한 결과 4월 1일 옥에서 풀려나
백의종군을 하게 됩니다.
이순신이 실각하는 원인은 어디에서부터 시작
되었을까 하고 되짚어보니 1596년 12월 12일의
의문의 부산 왜영 방화사건의 보고서부터 가또
기요마사의 정유재란 부산 침공의 차단으로
부산으로 나가 싸우라는 조정의 명을 거슬러
한산도에서 출진하지 않았던 것 등 이중간첩
요시라의 간계에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이순신이 임금의 명을 어기고 부산포로 나가지
않은 것에 대하여 박성, 남이신 같은 대신들의
탄핵과 상소문 등은 이순신의 운명을 흔들었는데
그것은 조선의 운명과도 직결되어 있었고 다음의
일정을 보더라도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1월 2일 선조가 가토의 도해 차단을 위해 이순신에게
부산으로 출동을 명하라고 지시(선조실록)
1월 13일 가토 기요마사의 부산 도해 (선조실록)
1월 14일 도원수 권율 한산도에 도착 (선조실록)
한산도의 이순신이 도원수 권율로부터 가토의 도해를
차단하라는 명령을 접한 것은 이미 시기적으로 늦었고,
이것을 이유로 통제사직을 파직 시키는 것은 선조를
위시한 조정의 무능과 모함으로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의 운명을 쥐고 있는 전장터에서의 일을 조정에서
하나 하나 간섭 하면서 장수의 생명을 좌지우지 하는
것을 보면서 일관된 명령체계는 물론이거니와 정확한
정보전달과 조정과 현장의 합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주는 귀한 메세지 입니다.
지금도 코로나팬데믹으로 전세계가 우왕좌왕 하는
것은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의료보건에 대한 조직과
명령체계 그리고 국민들과의 연대로 합심 하지 못하는
각국의 정부의 대응 능력 등이 정유재란에서 배우는
뼈아픈 교훈 입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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