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1-03-29
15,845
왜적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다.!
1592년 6월 28일. 저녁, 절 서쪽 산허리에 있는
메밀밭 가의 건조한 땅에 신주를 묻고는 메밀
씨를 뿌려 사람들이 모르게 했다. 망극한
난리통에 조상의 신주도 보존할 수 없어 먼저
땅에 묻고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려니 애통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 (後略)
1592년 8월 1일. 산속에 머물며 바위 아래에서
잤다. 내가 산에 들어온 지도 거의 한 달 남짓,
한가을로 접어드니 엄습하는 한기가 보통보다
갑절이나 차다. 너무도 그리운 노모와 처자식은
지금 어디에 있으며 여전히 보전하고 있으려나?
이를 생각하니어찌 비통하지않겠는가? (後略)
- 오희문 지음 [쇄미록] - 에서 발췌
또 하나의 다른 임진왜란의 기록물입니다.
임진왜란에 관한 조선시대의 3대 기록물로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당시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의 징비록, 그리고 오희문의 쇄미록을
꼽습니다.
오희문은 토목일을 맡은 선공감(繕工監)에서
종9품의 감역(監役)을 지낸 지식인으로 전쟁이
일어나기 한해 전인 1591년 11월에 지방에 있는
외거노비들에게 공물을 거두어들이려 여행을
떠났다가 그대로 임진왜란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희문의 맏아들 오윤겸은 인조 때 영의정을
지냈고 둘째아들 오윤해의 아들 오달제가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간 삼학사 중의
한 사람입니다.
쇄미록(瑣尾錄)은 [시경]의 구절에서 따온 것
으로 "보잘것없이 떠도는 자의 기록" 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하며 오희문이 임진왜란 때
9년 3개월 동안 피난살이를 한 기록 입니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일가를 거느리고 피난살이
하는 조선 양반의 고단한 하루가 생생하게
다가오는 일기들은 전쟁 중에도 삶이 어떻게
이어져 내려오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이외에도 의병장
권용중이 쓴 용사일록도 있고, 시골 선비
정경운의 고대일록도 있고, 세자 광해군을
모시고 분조를 이끌었던 정탁대감의 용사
일기도 있습니다. 국난을 당하여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알 수 있는 후방의
귀한 기록물 입니다.
요즈음 코로나19로 인하여 잃어버린 일상을
그리워 하며 오히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느꼈던
일상들이 지금 생각하면 기적이며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오희문의 피난중의 비일상적인 생활이 길어지면서
그대로 일상이 되어가는 것을 보며 지금의 우리를
생각해 봅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위기 뒤에는 반드시
새로운 질서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다면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 어떻게 응전 해야
하는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지금이
우리에게 위기인가, 기회인가, 앞으로의 방향을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시기인것 같습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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