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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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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으로 깨달은 왜적들의 전략!!
선조실록(선조 38년, 4월 20일)
병서라는 것은 문인들이 한가한 시간에 읊조리는
맹랑한 글처럼 한바탕 담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크게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연관되어 있고 작게는
뭇 백성의 삶과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최형국 지음 [병서, 조선을 말하다] - 에서 발췌
삼봉 정도전이 조선을 설계하면서 국방을 굳건히
하겠다는 의지로 [진법] 이라는 병서를 만들었으며
뒤이어 태종 이방원은 [진도지법] 이라는 병서를
만들며 역대 임금들도 하나같이 병서를 개량해 가며
왕권의 강화와 더불어 국방을 튼튼히 해왔습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 개전 하룻만에 부산이
함락되는 조선군의 괴멸적인 패배를 어떻게 설명
해야할까요? 당시 조선군은 보병에 북방세력
견제를 위해 훈련된 기병 중심으로 짜인 오위
편제가 중심이었고, 여기에 활과 총통 등 원거리
무기 약간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일본은 1543년 포르투갈로부터 들어온 조총을
개인무기로 보급하며 창검으로 구성된 기존의
단병접전 기법에 더하여 한층 복잡한 전술을
운용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야야스의
연합군은 조총부대를 운용하여 다케다 가쓰요리의
기마부대를 전멸하게 만든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탄금대전투의 패배는 조선 기병의 돌파 전술이
일본의 조총과 단병접전 전술에 취약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총뿐만 아니라
일본검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병
위주의 전술은 일본군의 새로운 전법에 무력했던
조선군에게 결정적 패배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논어 의 위정편(爲政編)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가이위사의(可以爲師矣)
옛것을 복습하여 새것을 아는 이라면 남의 스승이
될 만하다." 고 하였는데 이는 글만 공부하고 실천을
하지 않으니 새문물이 들어와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댓가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어버린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1543년 서원을 설립하고 글과 문자로 꼭꼭 닫혀버린
조선의 15 ~ 16세기의 실패를 두 번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새로운 도전과 행동하는 양심
으로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직시하고 국가의
현안인 국방외교의 실리를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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