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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1-06-08
15,571
임진왜란의 또 다른 기록!
1592년 8월 2일
(前略)
호남 미녀가 많이 포로로 잡혀 왔는데 애걸
하여도 불태워 죽였다 하니, 참혹하여 들을
수가 없다. 군관인 봉사 강만남이 총환에
맞아 죽었다. 그는 왕년에 군공으로 급제하여
용명을 떨쳤다. 별도의 장계에 데리고 간 아군
전사자가 무려 50여 명이라 한다. 날씨는 벌써
추워지는데 노모 처자가 깊은 산중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견디지 못하여 아마 죽었으리라. 울어
보아야 소용이 없구나. 지금 충청도 전통을 보니
동궁(東宮)께서는 이천 근처에 다다랐다 하나
강원도 지경인데 아마 관서(關西)에서 함경도로
가시나보다. - 정만록의 내용 일부 -
- 김현우 지음 [임진왜란의 흔적] - 에서 발췌
우리가 알고 있는 임진왜란 7년의 기록은 대개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유성룡의 징비록이 대표적
인데 그 외에도 정탁의 용사일기, 강항의 간양록,
오희문의 쇄미록 등이 있습니다. 오늘은 임진왜란의
또 다른 기록들 중에서 이탁영의 정만록을 소개
하려고 합니다.
정만록(征蠻錄)은 경상도 관찰사의 영리이던
효사재 이탁영(李擢英 : 1541~1610)이 쓴 일기
입니다. 직책인 영리(營吏)는 이방, 형방과 같은
부류의 관리로서 양반이 아닌 중인(中人)의
신분으로 경상도 관찰사 김수(金睟)의 막하에서
참모로 활동 하였습니다.
이탁영은 의병모집, 군량조달, 전략수립 등 군무를
맡았는데 그가 남긴 자료는 매우 구체적으로 임진
왜란이 발발한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종군하면서
틈틈이 정황을 기록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정리 후에 이를 나라에 아뢰니 선조임금이 정만록
(征蠻錄)이라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조선을 침공한
야만스러운 왜적을 정벌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1592년 6월의 용인전투 일기에는 그는 말에서
떨어지고 진흙탕에 빠지면서 정신없이 도망치는 자신과
다른 조선군 병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했고,
전란중에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걱정하는
마음을, 그리고 당시 백성들이 겪은 참담한 상황도
잘 적어 놓았으니 정만록이라는 이름은 선조임금의
희망사항을 강조한 것 같기도 합니다.
임진왜란은 국방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다시한 번 각인
시켜주는 뼈아픈 교훈이며 무엇보다도 튼튼한 국방은
국가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주변국들과의 무력을
밸런스 있게 유지하는 것이 강조되고 있는 현실임을
알려 줍니다. 역설적으로 전쟁을 잘 준비하는 것이
평화를 얻는 길이라는 것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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