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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장수 오유충(吳惟忠)을 영접하는 선조의 자세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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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장수 오유충(吳惟忠)을 영접하는 선조의 자세

선조실록 1597년 6월 14일(癸酉)
오 부총병(吳惟忠)이 왔다. 임금이 모화관에 가서
맞이하고 위로하였다. 초저녁에 송석경(宋錫慶)이
부총병을 문안한 뒤에 와서 말했다.
"부총병이 "오늘은 저물었으니 임금은 대궐로
돌아가도록 하고, 도성 안으로 들어간 다음 나중에
서로 인사를 하도록 하기 바란다." 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검열 이지완(李志完)을 보내어, 임금이 이미
성밖으로 나왔으므로 맞이하고 위로하는 의식을
그만둘 수 없다는 의사를 전하게 하였다. (後略)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명나라의 참전을 고마워하며 명나라 장수들에게
지극정성을 다하는 선조 임금의 모습입니다. 
대규모의 군사를 파병하고, 군량미도 지원하며
명나라안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겠으나 선조 임금으로서는 감사
하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명나라의 참전은 임진왜란 초기부터 평양성 탈환을
시작으로 왜적을 물리치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으나
지원군의 입장에서 왜적과의 화의를 한다면서 조선
조정을 제쳐두고 조선군의 작전을 통제하며 소극적인
전투 등으로 조선을 매우 힘들게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둔지에서 백성들에게 행한 극심한
침탈과 횡포는 침략군인 왜적보다도 더한 모습으로
지탄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명군 가운데서도
그 숫자는 드물지만 참된 군인의 본보기를 보여준
오유충 장군이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유충은 1533년생으로 자는 여성(汝誠)이며
호는 운봉(雲峰), 절강 의오 오감두촌 사람입니다.
1593년 파병되어 제4차 평양성 전투에서 부총병으로,
정유재란 때에는 충주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특히 중부지방에 세워진 오유충의 청덕비는 죽산,
충주, 단양, 풍기, 영천, 안동, 신녕 등 7군데나
있으며 이들 가운데 죽산산성에 세워진 [천조
부총병오유충덕청인용비]만 현존 한다고 합니다.
-  박현규 지음 [임진왜란 중국사료 연구]  -  에서 발췌

오유충은 평양성 전투에서 선공에 나서 부상을
입었으면서도 왜적을 물리치고 성을 탈환하는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또한 두 차례에 걸친 조선
파병 기간 중에 높은 인품과 청렴한 행실을 보여주어
조선 조정과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습니다.

당시 명군이 지나간 지역의 민초들은 명군의 극심한
침탈과 횡포를 이기지 못하여 모두 도망 갔으나
오유충의 군대가 지나간 지역에는 조금도 민폐를
끼치지 않아 민초들이 도망가지 않고 스스로 모여
들며 오유충의 청덕을 기리는 비석까지 세우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오유충은 참된 군인의 명예와 표상을 제대로 지킨 
인물이며 비록 명나라 사람이지만 도덕적 처신과
군인 정신을 굳게 지킨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조선에서도 오유충의 섬기는 리더십이 통하는
것을 보며 요즈음 시끄러운 국방의 그리고 군인들의
일탈을 생각해 봅니다.  

특히 지원군이라는 명분아래 펼쳐진 약탈과 만행이
오유충의 선행으로 상쇄할 수는 없지만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무엇을 해도 인간다움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임진왜란 역사에서 교훈으로 남겨주고
있습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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