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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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진주성 전투를 패전이라고 볼 수 없다.....
선조수정실록(1593년 6월)
왜적이 진주를 함락시켰으며 김천일, 최경회 등은
죽었다. 이때 진주에서 급한 형편을 보고하니
이여송(李如松)이 서울에 있으면서 주둔하고 있던
유정(劉綎), 오유충(吳惟忠), 낙상지(駱尙志) 등
여러 장수들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도록
명령하였으나, 여러 장수들은 왜적의 어마어마한
형세에 겁을 먹고 감히 나아가지 못하였다. (中略)
이달 21일에 적군이 진주성에 달려들기 시작했는데,
부근 고을에 군사를 나누어 두어서 성 밖의 지원을
차단하고 본성을 백 겹으로 포위하여 사방으로
수 백리 사이에 적들이 들어찼다. (後略)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명나라는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구원을
하지 않았으며 왜적들은 강화협상이 결렬될 경우를
대비하여 조선의 남쪽을 점령하려고 하는 의도까지
보이면서 결사적으로 덤벼들었습니다.
2차 진주성 전투는 조선을 무시하고 명나라와 왜적
들의 강화시기에 치루어진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복수전으로 총 병력 9만3천명이 왜군들이 참전한
전투였습니다.
조선은 2차 진주성 전투에 대한 임금과 조정 대신들
간의 의견 충돌과 진주성을 사수하려는 지휘체계에
혼란이 있었으며 명나라 군사나 외곽의 조선군과
의병들도 지원하지 않은 전면전 이었기 때문에 성은
함락되었습니다.
1차 진주대첩은 6일 동안 10회 교전 모두 승리했으나
2차 전투에서는 9일 동안 25회 교전 중 24승으로
마지막 전투는 장맛비로 인한 동문 쪽이 허물어
지면서 성이 함락되었는데 이것을 왜적들의 승리
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적들도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입은 38,000명의
병력 손실과 전력 약화로 실질적인 전투력을 상실
했으며 호남 공략의 목적이 좌절 되어 본진이 있는
부산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약 41%의 엄청난
사상자를 기록하고 물러났습니다.
조선군과 의병 전원 5,800명은 이 운명적인 전투
결과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주성을 사수
하였고 로마시대 마사다 전투처럼 함락이 예정되어
있었음에도 참전 하였으므로 2차 진주성 전투
결과를 패전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박희봉 지음 - 교과서가 말하지 않은 임진왜란 이야기에서 발췌)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때에 자국의 이익만을 위하여 연대하지 않고
협력하지 않는 나라들의 불협화음에 대비되는 최전선
의료진들의 방역과 백신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류애를 실천하는 보건의료 관계자 여러분들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원하는 리더십이요 팔로워십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진주 관군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에서 온 의병과
백성들이 진주성에 들어가 결사항전 한것처럼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고 스스로 전염병
감염 예방에 솔선수범 할때만이 이 어려운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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