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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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은 어떤 조직인가?
1592년 7월 6일 새벽, 이순신과 이억기의 전라도
연합함대는 좌수영을 출발해 역사적인 제3차
출전을 시작했다. 전라도 연합함대는 곤양과 남해의
경계인 노량에 도착해서 먼저 와 있던 경상우수사
원균과 합류했다. 이때 원균은 파손된 군선을 수리해
전력이 판옥선 7척으로 늘어난 상황이었다. 노량에서
연합함대를 구성한 이순신은 다시 한 번 합동작전을
위한 약속을 확인하고, 이 날은 진주 땅 창신도에
이르러 정박했다. - (後略) -
- 이민웅 지음 [이순신 평전] - 에서 발췌
우리의 자랑 세계 4대 해전중의 하나인 한산대첩을
치르러 노량에서 오늘 발대식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계급인 수사이면서도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주장이 되어 움직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은 세계 최강의 조선 수군의 조직과 수군들의
역활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경상,전라,충청 3도의
수군을 총지휘하는 종2품 삼도수군통제사를
총사령관으로 하고 통제사를 보좌하는 참모로
문관 종사관을 두었습니다.
그 아래로는 각 수군절도영의 지휘관으로 정3품
수군절도사를 두었고, 그 수군절도사를 보좌하는
참모로 정4품 수군우후, 그 밑에 작은 진(鎭)의
지휘관으로 종4품 수군만호와 큰 진(鎭)의 지휘관
종3품 수군첨절제사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조선 수군은 해전을 위해 잘 조직되고
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일본 수군은 전
투를 위한 조직이라기 보다는 병력을 수송하는
수송부대에 가까웠고 해전을 하겠다는 개념은
없었던 것으로 선박을 보유한 육군이라고까지
부른 학자도 있습니다.
우리의 주력 전투함인 판옥선은 일본의 안택선
이나 세키부네 보다 더 우세했으며 늘 전선의
수와 화력에서 일본 수군보다 우위에 있었고,
그것이 해전마다 승리하게 되는 가장 큰 토대가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전란 초기에 조선 관군이 일본군의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에 밀려 잇따라 패배했기
때문에 조선 수군도 불리한 상황에서 승리를
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
에게 밀린 적은 원균이 이끈 칠천량해전 밖에는
없었습니다.
한산해전을 학익진 전략으로 대승을 거둔 이순신과
그 전술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용한 조선수군의
출신을 살펴보면 일본 수군에 맞서 전함을 만들고
노를 젓고 활을 쏘며 전투를 벌여야 하는 일반 병사
들은 연근해의 백성들이었습니다.
군량을 비롯해 각종 경비를 직접 챙겨야 했고, 둔전과
소금 굽기, 해산물 채취와 병선 수리, 세곡선 운반 등
고된 군대 생활을 하면서도 나라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온갖 노역에 시달리면서 천시까지 받았지만
결국 이들 백성들이 조선 수군이 되어 판옥선과 거북선을
만들어 나라를 구한 순국선열들이 되셨으니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그 당시 세계 최강의 조선 수군은 피나는 훈련과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나라를 위한 헌신과 희생은
사대부들조차도 따라올 수 없는 애국심으로 있는 힘을
다 합친 조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조직이 필요하지 않을까,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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