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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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 토적(土賊 : 李夢鶴)
1596년 7월 17일 (壬午). 비가 뿌렸다. 충청도
홍산(鴻山)에서 큰 도적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홍산 군수 윤영현(尹英賢)이 잡히고, 서천 군수
박진국(朴振國)도 잡혀갔다고 한다. 바깥 도적도
없애지 못하고있는 이때 안 도적이 이러하니
참으로 가슴 아픈 노릇이다. 남치온(南致溫)과
고성(趙凝道), 사천(奇直男)이 돌아갔다.
1596년 7월 20일(乙酉). 맑다. 경상수사가
와서 보았다. 본영의 탐후선이 들어왔다.
어머님께서 평안하시다고 하니 다행, 다행이다.
그편에 충청도의 토적(土賊 : 李夢鶴)이 이시발
(李時發 : 巡安御使)의 포수에게 맞아서 즉사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이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이몽학은 왕족의 서얼 출신으로 정유재란이
일어나기 전 1596년에 충청도 홍산에서 의병을
가장하여 반란군을 모집하니 우리는 이것을
이몽학의 난이라고 부릅니다.
전쟁이 장기화 되고 흉년이 지속됨에 따라 심신이
지치고 삶이 피폐해진 백성들의 불평불만을 기회로
선동, 반란을 획책하였는데, 홍주목사 홍가신이
군사를 이끌고 마주 공격하여 토적의 무리를 궤멸
시켜 난을 진압합니다.
김덕령은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어 너무도 억울하게
옥사했으며 그 외에도 홍계남, 곽재우, 고언백 등
많은 의병장들이 의심을 받고 심지어 선조임금은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많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선무공신에 아무도 추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걱정처럼 왜적들도 물리치지 못하고
있는 이 때에 나라 안에서 이런 난이 일어나니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지금도 내부에서
이런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한심할 뿐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세계적인 바이러스 전쟁을
치루고 있는 이때에 우리 내부에서도 방역과 안전에
방심하고 있다가 희생을 치루지 않아도 될 국민들이
희생되는 것을 보며 임진왜란 당시의 일들을 떠올려
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 안의 문제부터 서로
힘을 모아 사랑과 연대로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제일 먼저 코로나19에 대한
가짜 뉴스를 퇴치하는 것이며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을
행하는 것입니다. 정부와 국민들의 올바른 소통과
화합은 당면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핵심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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