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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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최후 - 노량해전
이충무공 행록(行錄) (1598년 11월 19일)
- (前略) -
새벽에 공이 한창 싸움을 독려하고 있을 때
지나가는 탄환에 맞았다.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
(戰方急 愼勿言我死)" 이 말을 마치자 공은
세상을 떠나셨다. 이 때에 공의 맏아들 회(薈)와
조카 완(莞)이 활을 잡고 곁에 있다가 울음을
참고 서로 말하기를, "일이 이 지경에 이르다니,
망극, 망극하구나." "그렇지만 지금 만일 곡(哭)
소리를 내었다가는 온 군중이 놀라고 적들이
또 이 틈을 타서 기세를 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시신을 보전하여 돌아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전쟁이 끝나기까지는
참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는 곧 시신을 안고
방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오직 공을 모시고
있던 종 김이(金伊)와 회(薈)와 완(莞) 세사람만
알았을뿐 비록 친하게 믿고 지냈던 송희립
(宋希立) 등도 알지 못했다. 이들은 그대로 기를
휘두르며 계속 싸움을 독려하였다. - (後略) -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1598년 11월 18일 저녁, 연합함대의 규모는
250여 척, 2만1천여명의 조.명연합군은 진린을
본 함대로, 좌선봉에는 등자룡 함대, 우선봉에는
이순신 함대로 편성하여 노량으로 향했습니다.
이날 밤 자정 무렵 "만일 이 원수들을 섬멸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결연한 전투 의지를 스스로 다지면서
부하들의 전의도 고양시켰습니다.
전투는 19일 새벽 4시경 초전부터 총력전으로
시작되었는데 관음포 앞바다에서 진린의 함대가
앞뒤로 포위를 당하자 이순신은 전 함대에
“진린 도독을 구하라.” 는 명령을 내렸고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 전사하신 그야말로 살신성인
(殺身成仁)의 노량해전이었습니다.
이순신의 마지막 명령(유언)에 따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전투는 지속되었고 그 결과 노량해전은
승리했습니다. 임진왜란의 대미를 승리로 장식한
연합작전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역사적 의의가
큰 해전이었습니다.
긴박하고 충격적인 상황 하에서도 아들 회(薈)와
조카 완(莞)이 안정된 지휘체계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 장군이 평상시 대비하였던
“비상 지휘체계 시스템”이 가동되었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필승의 신념으로 야전 지휘관
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 하셨습니다.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무엇일까요?
나약해진 나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 원칙과 기본은 지키겠다는 용기를
가질 때만이 실천할 수 있다는 것, 어떠한 역경
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긍정적인 자세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리더의
참모습들을 보여 주고 떠나셨습니다.
위기관리 리더십의 상징인 이순신의 정신이 깃든,
21세기의 대한민국,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순신 장군께서 그토록 원하셨던 자존감 넘치는
후손들이 잘 사는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보고
계시기를 염원해 봅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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