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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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형이 경험한 이순신의 능력과 인품!
선조실록 (1598. 12. 7. 戊午)
좌의정 이덕형(李德馨)의 장계는 이러하였다.
이순신(李舜臣)이란 사람을 신은 그 전에는
얼굴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 번쯤 서신
왕래를 한 것만 가지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전날에 다만 원균(元均)이,
그가 일처리를 옳지 않게 한다고 하는 말만
듣고는 짐작하기를, 재능은 있지만 진실성과
용감성은 남만 못한 것 같다고 여겼을뿐 입니다.
그러다가 신이 본 도에 내려가서 바닷가의 백성
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며 떠받들어 마지않는
것을 보고, 또 그가 4월 달에 처음으로 고금도
(古今島)에 들어갔는데도 여러 가지 옳은 조치
들을 극진히 취하였기 때문에 서너달 가량 되는
동안에 저번 한산도에서 마련했던 것보다 더
많은 백성들과 군량을 마련하였다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서 그가 재능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後略) -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이순신 장군께서 돌아가시고 나서야 장군의
능력과 인품에 감동한 좌의정 이덕형이 “승리를
알리던 날 군량을 운반하던 사람들이 이순신이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무지한 늙은이,
어린이들까지도 수없이 떨쳐 나와서 울며불며
조문하였습니다. 사람들 속에서 이런 신망을
얻는다는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하며 이순신의 죽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이순신의 멘토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영의정 유성룡, 조선 최고의
거북선을 제작한 군관 나대용, 이순신을 살리려고
신구차를 올린 정 탁 대감 등 끝까지 믿고 의지하며
최선을 다해준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습니다.
이순신은 늘 따뜻한 배려와 소통으로 임금을 비롯하여
부하들에게도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예를
다하였으며 왜적의 어린 포로들까지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어질게 대했습니다. 내가 차라리 남솔(濫率)
이라는 죄를 지을지언정 조카들을 버릴 수 없다는
집안의 어른으로서 가정사를 돌보셨습니다.
어떠한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백성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며 의연하게 처신하셨습니다. 모함을
받아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를 빼앗기고 한양으로
끌려 올라갈 때에도 나라를 위하는 충성스런 마음
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백의종군 길에 어머니를 여의고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떠났을 때도, 명량대첩의 승리로
제해권을 되찾은 기쁨도 잠시 왜적의 칼날에
사랑하는 셋째아들 면을 잃고, 종 강막지의 소금
창고 안에서 소리죽여 울면서도 참고 견디어
내셨습니다.
이순신 리더십의 요체는 사람을 부르고 모으며,
그들을 어질게 대하고, 시작한 일은 어떠한 고
난이 들이닥쳐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이순신의
진정성 있는 삶의 모습 입니다. 이순신의 인(人),
인(仁), 인(忍)은 그의 충효정신에서 나오는
바른 마음의 산물이며 바르게 실천하는 리더의
덕목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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