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실천하는 이순신 포럼

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만력통보를 만들어서......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1-11-22

조회 14,816



만력통보를 만들어서......

선조실록 1598. 4. 8.(壬戌)
호조에서 건의 하였다.
(前略)... 요사이 술, 고기, 두부, 소금, 장, 땔나무와
같은 소소한 물건들을 사는 데는 모두 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앙이나 지방의 백성들이 이 덕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명나라 군사들에게 물건을 사고팔 때에만
시험 삼아 썼지만, 시행한지 이미 오래되자 습관이
되어서 술을 팔거나 땔나무를 파는 사람들은 사려는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먼저 은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것이 편리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만일 [만력통보]를 만들어서 명나라 사람들과
물건을 사고팔며 유무상통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은을 쓰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동전 쓰기를 원하게
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後略)....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전쟁은 결국 한 나라의 국력과 관련된 것이고,
국력은 곧 경제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인데,
경제력의 수준과 화폐의 사용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당시 조선의 경제 상황을 이해 하는데
참고가 될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명나라 장수들은 화폐(은)를 사용 하라고 적극 권장
하고 있고, 선조 임금과 조정에서는 우리나라의
습속이 틀리니 시행되지 못할 것이다 라고 회의적
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화폐경제가 정착되지 못하고 곡식이나 베(布木)가
교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제가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국강병의 정책이 효율적으로 추진될
수는 없었겠지요.

이미 은(銀)의 사용의 편리함을 안 백성들의 일상을
보며 우리나라의 은(銀)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함경도 단천 광산에서 일하던 양인인
김감불과 노비 김검동은 어전회의에 (연산군 9년,
1503년 5월 18일) 참석해 최첨단 은(銀) 제련법인
회취법(灰吹法)을 시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오히려 이 은(銀) 생산기술은 사치와 향락을 조장하는
적폐라며 사치 근절과 검소한 생활 그리고 농업을
장려 한다는 명분속에 함경도 단천 광산을 1516년
패쇄 시켰고 이 놀라운 신기술은 사장되고 말았습니다.

16세기는 대항해 시대로 은(銀)이 대체 화폐로 바뀌는
세상이 되었는데 조선은 받아들이지 않고 그 좋은
기회를 발로 차버렸습니다. 우리가 개발한 첨단 기술을
말입니다. 그 당시 세계 최대의 은광은 볼리비아의
포토시 은광이었습니다.

단천 광산을 패쇄한지 17년이 지난 후 조선에서
천대 받던 기술자 두 사람, 종단(宗丹)과 계수(桂壽)는
일본으로 망명하여 이 새로운 은(銀) 제련술을 소개
하고 가르쳤으며 1526년에 일본의 이즈모에서 발견된
이와미 은광은 우리의 은(銀) 제련기술인 회취법을
사용하여 세걔 제1위의 은광으로 탈바꿈 하였습니다.

유출된 첨단 은(銀)제련기술은 연(鉛)과 은(銀)의
분리기술로 광석에 섞여 있는 납과 은의 녹는 점
차이를 이용한 당시의 획기적인 비밀로 기술적
혁명이었는데 우리는 스스로를 버렸습니다.

1543년 일본으로 들어온 포루투갈의 머스킷 조총
두 자루는 복제와 개량을 거듭한 끝에 1592년
임진왜란 때 우리를 반격하는 비수가 되어 조선의
백성들을 쏘고 죽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최첨단 기술을 인정하지 않고 버렸기 때문입니다.

불과 4-500년 전의 역사의 교훈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겠습니까? 우리 기업들의 우수한 기술들을
적폐로 몰아 인정하지 않고 사장시키는 일을 하지
말라고 그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추천메일 보내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