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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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함락과 도망치는 명나라 장수 양원(楊元)....
선조실록 1597. 8. 18.(丙子)
왜적들이 남원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양 부총병(楊元)은 서문으로 빠져나와 겨우
몸을 피하였다. 이달 12일 적들이 남원을
에워싸고 밤낮으로 공격하였는데, 부총병의
군사는 화살이 다 떨어지고 힘이 다 떨어졌다.
16일 밤에 적들이 남문을 격파하고 올라오자
부총병은 형세가 급해서 다만 3백여 명을
데리고 서문으로 빠져나왔는데, 2발의 탄환을
맞고 10여 명만 데리고 돌아왔다. - (後略) -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1597년 7월 16일 칠천량해전으로 조선수군이 궤멸되고
한 달 후인 8월 15일에는 남원성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함락됩니다. 이에 더하여 4-5일후에는 전주성
마저 무혈입성 당하고, 왜적들은 직산으로 북진하며
이 기회에 다시한 번 더 한양을 함락 시키려는 심산
이었지요.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유재란의 한 가운데서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 되어 남해안을 돌며 대책을
세우며 구국의 일념으로 군사들을 모으고 군량미를
모으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전라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본진을 한산도로까지
옮겨가며 제해권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이제 다 잃어
버리고 쫒기는 신세가 되었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차기전투를
준비하는 의연한 이순신 장군의 마음가짐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방비 상태로 어쩔수없이 당하는 일은 이순신 장군이
제일 싫어하는 삶의 자세로서 늘 부하들에게 강조한
준비 자세인 유비무환의 리더십인 것이지요. 명나라
장수인 양원도 준비가 안되어 있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너무도 어이없게 당한것이지요.
1592년 이여송이 조선으로 파병될 때 부총병으로서
평양성 전투, 벽제관 전투 등에 참전 하였고 정유재란
때에도 참전하여 강화협상에 실패한 심유경을 경남
의령에서 붙잡아 처형하였던 기록이 남아 있는 양원은
남원성 함락으로 이제는 본인이 처형 되어 남대문에
효시 되었으니 전쟁이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요.
이순신 장군께서 싸움마다 이긴 것은 그저 신화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것이 철저한 준비가 없이는 이길 수 없는
만전(萬全)의 원리인것을 알아야 합니다. 머리로만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고 실천을 해야만 승리할 수 있는 것
입니다. 남원성 전투는 각 나라 장수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잘 보여 주는 좋은 사례 입니다. 지금의 우리와
처해 있는 환경이 같지 않습니까?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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