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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조선의 교역에 관하여.....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1-12-20

조회 14,686



16세기 조선의 교역에 관하여.....

(前略)....   공은 진중에 있으면서 항상 군량을
걱정하여 백성들을 모아서 둔전(屯田)을 경작하게
하고, 사람을 뽑아서 고기를 잡게 하고, 소금을 굽고,
질그릇을 만드는 일 등에 이르기까지 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배로 싣고 나가 팔아서
양식과 바꿔오게 하니, 오래지 않아서 곡식 수만 섬을
쌓아놓게 되었다. (後略)

-  조카 정랑(正郞) 이분(李芬)의
    이충무공 행록(行錄)  -  에서 발췌  

"경상좌도 관찰사 한효순이 치계하였다. 왜적이
전에는 가지고 있던 우마를 전부 팔아버리더니
이달 20일부터는 진주를 공격하려고 밤낮없이
군사들을 조련시키며 전일에 팔아버린 우마를
도로 사들이고 있습니다." 

-  선조실록 계사년(1593년) 2월 18일  -  에서 발췌

배로 싣고 나가서 팔았다고 했는데 누구에게
팔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왜적들도 누구에게
팔았다가 도로 사들이는지 궁금합니다.  설마
왜적들과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원래 조선은 농업을 경제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상업 억제 정책을 쓰면서
교역을 장려하지는 않았습니다.

임진왜란의 제1 선봉장인 고니시 유키나가는
오사카 근교 사까이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경제감각이 있는 사무라이 출신 입니다. 조선의
양반들을 상업을 영위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
했으니 늘 부족한 물자를 내부적으로 근검절약
하는 자급자족적 경제를 지향할 수밖에 없었지요.
전쟁을 치르는 관점이 처음부터 다른 것입니다.

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 대사의 청해진, 고려시대의
아라비아 상인들의 예성강 하류에 있는 벽란도항을
통한 해상무역은 그나마 우리나라 교역의 전성시대
였습니다. 또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조공
무역의 위계질서는 군사적으로 강력한 중국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부유한 중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입니다.

그 당시 세계는 대항해시대로 각국은 서로 교류하고
교역하는 새로운 변화에 휩싸였을 때 일본은 1543년
표류해 온 포루투갈의 조총과 만남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밀려 들어가게 됩니다.

이 때부터 선진국인 조선과 야만의 왜적들과는 국부의
차이로 일본의 강점을 파악하기 어려워졌던 것입니다.
일본이 상업과 무역의 활성화로 부국강병의 길을 걸을
때, 우리는 근검절약의 성리학적 측면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경제감각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전쟁을 할 수 있는 전력은 곧 경제력인데 전쟁자금과
조총을 충분히 준비한 일본의 경제력과 자급자족한
군수물자와 사즉생의 정신력, 그리고 탁월한 이순신의
리더십을 앞세운 조선군의 경제력은 피로 쓴 임진왜란의
교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전쟁은 당사자인 국가의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지금의 21세기에도
유효합니다. (참고문헌 : 문소영의 못난조선)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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