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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항의 간양록.....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2-01-10

조회 14,557



강항의 간양록.....

(前略).....신이 엎드려 우리나라의 형편을 살펴
보건대 평소에 인재를 기른 일도 없고 백성을
가르친 일도 없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농민들을 긁어모아 싸움터로 몰아세우니, 그나마
권리나 있고 돈푼이나 있으면 뇌물을 먹이거나
권력을 떠세하는 등 갖은 방법으로 다 내빼고,
헐벗고 힘없는 백성들만 싸움터로 내몰리기 마련
입니다. 졸병들에게도 통솔자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한 고을 백성으로 절반은 순찰사에게 속하고
절반은 절도사에게 속하기도 하며,  한 졸병의
몸으로 아침에는 순찰사에게 붙었다가 저녁녘에는
도원수를 따르기도 합니다. (後略)

-  이을호 옮김 [강항의 간양록]  -  에서 발췌

정유재란 중에 포로로 잡혀가 바다 건너 왜국에서
보낸 환란의 세월을 기록한 강항의 간양록 중에서
적국에서 임금께 올리는 글 (賊中封疏)에서 발췌한
글 입니다. 전쟁과 전쟁경험을 냉정한 눈으로 보고
정리한 글은 우리가 얼마나 평소에 준비하지 않고
살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항이 지은 간양록은 적국에서 임금께 올리는 글
(賊中封疏), 적국에서 보고 들은 것 (賊中聞見錄),
승정원에 나아가 여쭌 글 (詣承政院啓辭) 등 포로
생활을 통하여 객관적이고도 냉정하게 일본 현지의
정세를 기록한 책입니다.

강항은 정유재란 때 분호조판서 이광정의 종사관
으로 전북 남원에서 군량보급에 힘쓰며, 조선의
관원으로서 전쟁에 참전하였지만 일본군의 포로가
됨으로써 사대부로서의 충효관에 어긋나는 경험을
하였고, 포로생활의 죄스러움과 송환을 경험하면서
적국의 사정을 정확하게 보고하였습니다.

조선의 미흡한 전쟁대비, 문란한 군역제도와 양병
제도, 공평하지 못한 논공행상 및 변장들의 가렴
주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전쟁을 서술 하였습니다.
자신이 기록한 정보의 출전을 밝히면서 사실에
바탕을 둔 객관적 정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포로생활 중 강항은 1598년 오사카를 거쳐
교토의 후시미성으로 이송 되었는데 이곳에서
일본의 승려이자 학자인 후지와라 세이카를
만나고 교유하며 그들에서 조선의 성리학을
전달해 주어 일본의 주자학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이순신의 난중일기, 유성룡의 징비록 등
전란의 아픈 역사를 읽으며 느낀 교훈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강항은 포로의
신세가 되어 죽음으로 절의를 지키지 못한 자신을
스스로 죄인이라 하여 더 이상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는데 그의 나라사랑 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강항의 간양록은 또 하나의 다른 난중일기 입니다.

(참고문헌)
이순신연구논총(순천향대 이순신 연구소, 김경록 논문)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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