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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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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백성은 무역을 모른다.
1593년 2월 5일.
조선국은 풍속이 은량(銀兩)을 사용하지 않고
무역에 힘쓰지 않아 시가(市價)가 전혀 없습니다.
무릇 포필(布疋)을 사용하여 쌀, 콩, 풀단과
바꿉니다. 좋아하는 것은 청남색의 무명, 비단,
솜옷, 신발 등입니다. 이미 사들인 쌀과 콩,
이외에 쌀을 살 은량으로는 청남색의 무명,
비단, 솜옷, 신발을 사서 관원에게 맡겨 조선
국왕에게 보내 두 지역의 시가에 따라 쌀, 콩,
풀단으로 바꾸어 가까운 쪽의 군전으로 운송해서
보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송응창의 [경략복국요편]역주 - 에서 발췌
위의 글은 조선에서 군량 수집을 맡겼던 명나라
도사 장삼외(張三畏)가 보낸 보고서 입니다.
그래서 경략 송응창은 경리양향 호부주사 애유신
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서를 보내고 있습니다.
조선에서는 은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현재 보유한
은으로는 군량이나 마초(馬草)를 구입할 수 없어
포나 비단으로 무역을 할 계획으므로 현재 보유한
은이 얼마나 되는지, 군량과 마초는 얼마나 남았는지
부족분을 포나 비단으로 사들일 수 있을지 여부 등을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것입니다.
이여송이 4만여명을 데리고 조선으로 들어와 평양성
탈환을 진두지휘 하고 있습니다만 군사들만 온 것은
아닙니다. 군사들 외에도 전쟁을 치르기 위한 전략적
자원에 대한 준비 사항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준비하기 위하여 무역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조선은 무역을 모르고 물물교환을 하고 있으니
명나라 쪽에서는 답답해서 이런 명령서들이 오고갔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1593년이면 유럽에서는 대항해시대가 열려 자국의
국부를 쌓아가기 위하여 온갖 무역을 다하고 있던
때입니다. 그 때 우리는 경제에 대한 인식이 지극히
미흡하였고, 전쟁을 치를 경제력도 갖추지 못해
명나라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무역수지가 세계 10위권안에 들어와 있는
선진국이며 무역으로 국익을 쌓아가는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만 불과 430년 전의 임진왜란 당시에는
물물교환을 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습니다.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이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 낸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
온다고 하여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방심하지말고 겸손하게 미래를 위해서
후손들이 잘 사용하기를 기원 하면서 코로나19
방역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를 내어봅시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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