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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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포 속으로.....
(前略).....한바탕 맹렬히 싸웠다. 앞을 막힌
적선은 뒤로 돌아 보았다. 뒤를 따라 급히
치던 이순신의 대함대는 어디론지 자취를
감춰 버리고 그림자도 없었다. 그들은 따라오던
순신이 저절로 없어진 것이 좋았다. 그래서
뒤로 방향을 돌려 안심하고 관음포로 들어갔다.
그들은 행장, 의홍, 진신의 군사였다. 싸움에
패잔한 나머지에 싸울 뜻을 잃고 어디나 길이
열린 대로 달아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침내 관음포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선은
이순신의 맹렬한 공격을 잠시라도 피하게
되었다. (後略)
- 회정 김기환 저 李舜臣世家 - 에서 발췌
노량해전 때 순천 왜성에 고립되어 있는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출 하고자 사천에서 출동한 시마즈
요시히로는 군대가 수세에 몰리자 안간힘을 쓰면서
탈출구를 찾아낸 곳이 관음포 입니다. 뒤가 막혀있는
포구인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오늘은 그동안 우리가 잘 살펴보지 않았던 시마즈
요시히로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위의 본문에서
의홍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4번대 선발대로 조선을
침략했습니다. 강원도로 진격 하였으며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노량해전 당시 일본측
지휘관이었습니다.
또한 남원성 전투에서는 심당길을 바롯하여 도공
80명을 강제로 일본으로 납치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심수관이라는 도공의 후예가 사쓰마야끼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1535~1619) 조상
대대로 사쓰마 지방의 슈고 다이묘로서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칠천량해전에 참전하여 조선수군을 격파하고 남원성을
함락시키며 사천 선진리성에 왜성을 쌓고 주둔 하였는데,
사천성 전투에서도 조.명연합군을 물리쳤으며, 노량해전
에서는 관음포에서 싸우다가 퇴로를 확보하며 빠져나갔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아들을 인질로
보내며 화해하고 영지를 확보하며 사쓰마번을 관리
했습니다. 일본은 조선 침략군을 19번대까지 준비해서
만전을 기하며 쳐들어왔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나서야 전쟁은 끝난것이지요.
도공들을 잡아가서 사쓰마번의 부를 축적한 시마즈
요시히로의 조선 침략을 살펴보며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적들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며
쳐들어왔는지 복기해 보는 것이 어떠시겠습니까?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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