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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의 침입과 이대원의 전사.....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2-04-04

조회 14,305



왜구의 침입과 이대원의 전사.....

선조실록 1587년 2월 6일 (乙酉)
전라 감사가 급보를 올리기를 "왜적의 배 18척이
흥양 경내에 침입하였습니다.  녹도 권관 이대원
(李大源)이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들어가 보고하니, 신립(申砬)을 방어사로 임명
하여 군관 30명을 거느리고 당일로 떠나게 하였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함평 사람 이대원은 1587년 녹도만호에 부임했고,
왜구가 손죽도에 출몰하자 즉시 출동하여 왜구의
우두머리를 잡아 그의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심암(沈岩)에게 넘기고 전투경과를 보고했습니다.

수사 심암은 이대원의 공을 탐냈고, 이대원은 거절
하였는데, 며칠 후에 다시 쳐들어온 왜구들을 격퇴
하라고 이대원에게 무리하게 전투 명령을 내리며
그리고 지원군을 보내겠다고 약속 했지만 보내지
않아 결국 이대원은 왜구들에게 잡혀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22세의 꽃다운 청년 장수는 이렇게
가고 말았습니다.

부패한 장수로서 부하들을 잘 다스리지 못했던
수사 심암은 처형당했으며 너무도 억울하게 죽은
이대원의 혼령을 녹도의 녹도사에 모셨는데
그 후에 1592년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한 녹도
만호 정운의 충혼도 함께 모시고 쌍충사라고
이름을 변경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충신을 모셨다고 해서 1683년 숙종
임금으로부터 쌍충사 사액을 받았습니다.
쌍충사는 지금의 고흥에 있는데 이순신 장군은 
장계를 올려 녹도 만호 정운을 함께 배향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5년전의 일입니다. 1587년 당시의
전라좌수사 심암과 1591년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비교가 됩니다. 수사로서 부하장령들을 대하는 
리더의 자세가 눈에 띄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판옥선을
수리하고 거북선을 만들고 수군으로서의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덕분에 옥포해전부터 승리를
거두며 해전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리더가 나아가려는 방향이 무엇인지 부하장령들과
함께 공유한다는 것, 새삼 중요함을 느낍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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