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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서 어사화를 보았으니.....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2-04-18

조회 14,065



비로서 어사화를 보았으니.....

1597년 4월 16일
느지막이 평강(오윤겸)이 왔다. 5리 길 밖에
장막을 치고 옷을 갈아입고서 꽃을 세우고
풍악을 울리며 왔다. 쇠퇴한 가문에 이런
경사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 문중에서 비로서
어사화를 보았으니, 이제부터는 급제하는
사람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매우 다행한
일이다. 어머니께서는 희비가 교차하는지 
눈물이 줄줄 흐르는 줄도 모르신다. 먼저
신주 앞에 차례를 지냈다.  (後略)

-  오희문 지음 [쇄미록]  -  에서 발췌
   

오윤겸은 오희문의 장남으로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서 대신을 지낸 목민관이자
행정가였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는 국난 앞에서도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았으며 묵묵히 올바른 처신을 한 훌륭한
신하였습니다.

외교관으로서도 명나라와 일본을 왕래하였는데
1617년에는 일본에 회답 겸 쇄환사의 정사로
임진왜란 때 잡혀갔던 포로 150여 명을 데리고
왔고 이 때부터 단절되었던 일본과의 관계가
정상화 되었다고 합니다.

양반가에서 과거 급제는 평생 잊지 못할 대단한
경사였는데 오윤겸은 나이 사십이 다 되어서야
문과에 급제 하였습니다. 그 기쁜 모습이 아버지
오희문이 지은 쇄미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더욱 더 흥미롭습니다.

과거 급제 후 삼일유가(三日遊街)하는 모습,
집에 돌아와 조상의 사당에서 먼저 홍패(紅牌)
고사를 지냈고, 스승과 선배 및 친지들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잔치를 베풀고 놀이꾼을 시켜
한바탕 놀게 하고 손님들을 초대하는 급제 잔치를
하였습니다.
 
전쟁 중인데도 조선은 과거시험을 실시하여 관리를
충원하는 시스템을 계속 유지해 왔습니다. 오희문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음서로 관직에 진출했는데
아들은 과거에 급제하여 영의정까지 올라갔으니
가문의 영광이라고 할 만 합니다.

아무튼 전쟁 중에도 과거 시험을 시행했다는 점,
양반들은 과거 시험을 보러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늘 준비하고 있었다고 하는
희망을 잃지 않고 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아무리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미래를 그리며
준비하는 사람이야말로 다가오는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다시 시작하는 사람은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도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들이겠지요.

글 이부경
010-2228-1151/ 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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