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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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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의 납치 명령서....
사로잡아 놓은 조선 사람 가운데 세공 기술자와
바느질 잘 하는 여인, 손재주가 있는 여인이
있으면 곁에 두어 여러가지 일은 시키고 싶으니
보내 주기 바란다. 부하들에게도 다시 일러 주기
바란다. 1593년 11원 29일 豊臣秀吉朱印
- 황정덕, 도진순, 이윤상 공저
임진왜란과 히라도 미카와치 사기장 - 에서 발췌
위의 주인장(朱印狀 : 붉은 도장이 찍힌 명령서)은
제1진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에 소속되어 있던
히라도의 번주 마쓰우라 시게노부에게 전해지고.....
수없이 많은 도공(사기장)들을 납치해 데려갔습니다.
윗글의 세공 기술자는 도공을 말합니다.
조선 출정 기간중 부하 3,000명 중에서 1,918명이
전사했지만 돌아올 때는 오히려 인원이 7,200명
으로 늘어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기장들과
양인들을 납치해 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임진,정유재란을 우리는 흔히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부릅니다. 조선인 피랍자는 약 5 ~ 10만 명 정도로
추정 되는데 그 가운데는 도공들이 제일 많았고
유럽에 노예로 팔린 사람들도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가고시마의 심수관이나 아리타의 이삼평은 알고
있어도 히라도의 웅천(지금의 진해) 사기장들은
잘 모르고 있었으며 웅천 사기장 종차관은 웅천
에서 납치되어 갔다고 합니다.
웅천 왜성에 왜장 마쓰우라 시게노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는 히라도의 26대 당주이자 초대 번주
였습니다. 납치된 웅천 사기장 종차관은 차 사발뿐
아니라 도요토미가 좋아하는 복스러운 불상도 잘
빚어서 그에 대한 포상으로 "후쿠모토 야지우에몬"
이라는 성과 이름을 내려 주었다고 합니다.
조선은 참혹한 전쟁 과정에서 엄청난 인적, 물적
손실과 정신적 피해를 입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가
되어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 비참한 생활을 했는데
왜적들은 국부를 쌓으며 풍요로운 생활을 이어갔으니
21세기의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 교훈을 잘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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