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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鄧) 총병이 전사하였으니 절통하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2-06-07

조회 14,033



등(鄧) 총병이 전사하였으니 절통하다.....

선조실록 (1598. 11.26. 丁未)
(前略)..... 더구나 등(鄧) 총병이 우리나라 일로
해서
만 리 변방에 와서 바다에서  힘껏 싸우다가
불행하게도
전사하였으니 절통한 마음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後略)

(前略)..... 일본군이 한꺼번에 들이 닥치자, 등자룡은
힘을
떨쳐 격살했으나.......선혈을 뿌리며 불행히도
전사했다.
일본군이 벌떼처럼 몰려와 잔혹하게도
노장군의 머리를
베어가고, 또 등자룡의 유해에 있던
것을 몽땅 겁탈했다.
(後略)

-  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발간 [명(明) 수군장수
등자룡(鄧子龍)과 노량해전]  -  에서 발췌

등자룡(1531 ~ 1598)은 명 만력연간에 저명한 장수
입니다.
젊을 때 왜구를 섬멸한 전투에 참가한 경험이
풍부하여
명 신종(神宗)이 조선에 수군장수로 파병을
임명하였는데
그 때 나이가 67세인 노장이었습니다.

 명 수군은 전선 5백척, 관병 13,200명으로 총병 진린
(陳璘),
부총병 등자룡의 통솔 아래 조명연합수군을
꾸려서 광양만을
봉쇄하여 고니시 유키나가와
시마즈 요시히로가 노량해협을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묘도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등자룡 부대는 노량해협의 서쪽 좌측에 잠복하고,
이순신 부대는
우측 관음포에 잠복하였습니다.
결전일은 11월 18일이었는데 마침
이날은 등자룡의
생일이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마음이
아픕니다.

노량해전은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로 일본측은
전선 450척,
사살 및 살상된 일본군은 1만여명이며
일본 장수 36명이 격살된
막대한 피해를 입고 도주
하였습니다. 조명연합군의 손실도
만만치 않았는데
통제사 이순신을 비롯하여 명나라 부총병 등자룡,
가리포첨사
이영남, 낙안군수 방덕룡, 흥양현감
고득장 등 10여명이 전사
하였습니다.

나이가 70에 가까운 노장군 등자룡과 통제사 이순신이
전사한
소식에 온 군영이 통곡했고 관이 옮기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두
제를 올리고, 수레를 붙잡고 울어 수레가
나갈 수가 없었는데
조명장수들의 목숨과 선혈로 얻기
힘든 평화를 얻었습니다.

호국 보훈의 달입니다. 나라를 지켜주신 순국선열들과
호국영령들이
계셨기에 우리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할 때 400여년 전의
일도 잊어서는 안될 것
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 후손들의 도리를 다
할 때
나라는 부국강병이  될것 입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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