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조국의 운명이 위태롭도다. 극악무도한 적도가
하늘의 이치를 거슬러 함선 수 천척으로 바다를
건너니 그 독기가 조선 천지에 가득한지라 ...(中略)
조선의 승병들이여! 일어서시오! 중생을 대신해
고통 받는 바 곧 보살의 할 바요, 나아갈 길이라.
일찍이 원광법사께서 임전무퇴라 이르시니, 무릇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구함은 부처님 법을 따른
우리 조상들이 대대손손 받들어온 전통이오,
우리 백성이 살아남을지 아니할지, 조국이 살아
남을지 아니할지, 모두가 이 싸움에 달려 있소.
조선의 승병들이여! 분연히 얼어서시오......(後略)
- 휴정 서산대사의 격문 - 에서 발췌
휴정 서산대사가 진충보국(盡忠報國)의 결의로
전국의 사찰에 내린 격문의 일부 입니다. 의주
행재소에서 선조 임금의 명을 받아 승병을 총괄
하는 팔도 도총섭이 되어 73세의 노령으로 승병을
모집, 지휘하여 왜적을 물리친 승병장으로서의
활동을 크게 떨치셨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모신 최초의 사당 여수 충민사(사당)
옆에 석천사(사찰)가 있습니다. 또한 해남 대흥사
(사찰) 경내에 서산대사를 모신 표충사(사당)가 있고,
밀양 표충사(사찰)의 경내에는 사명대사를 모신
표충사(사당)가 있습니다.
어디가 사찰이고 어디까지가 사당인지 구분이 안되는
곳으로, 임진왜란때 왜적에 맞서 목탁을 내던지고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쟁터로 나갔던 승려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서 사찰 안에 사당을 짓고 모신것은 유림과
불교가 서로 구분하지 않고 함께 하는 평화 공존의
장이었습니다.
종교가 달라도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왜적을 물리치는
일에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으며 이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소양인 충(忠)과 효(孝)를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없이 충직한 마음으로 나라사랑을 실천하지
않으셨나 생각합니다.
용기와 희망을 주며 임진왜란 때의 서산대산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서 정조 임금께서는 해남 대흥사에 있는
표충사(表忠祠)에 직접 현판을 써서 내려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국제정세의 역류에
흔들리고, 세계경제의 흐름에 흔들리고, 홍수처럼 밀려오는
정보에 흔들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감싸안는
포용력 있는 리더십이 요구되는 새로운 때 입니다.
내 마음의 중심이 바로 서 있지 않으면 이리저리 흔들리게
마련이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없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유림과 불교가 관, 민, 모두 합심하여 화합된 모습으로
왜적을 물리쳤듯이 우리도 용기를 내어 최선을 다하여 이
어려운 난국을 헤쳐 나가도록 지혜를 모읍시다.
글 이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