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 이순신 리더쉽
관리자
202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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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룡이 반대하여 말하기를...... (前略)....."장군에게 나라의 중대한 책임을 맡긴 이상 응당 담당 지역 안에서 죽어야 할 것이요. 이곳은 바로 호서와 호남으로 통하는 목구멍과도 같아서 이곳을 잃으면 호서와 호남이 위험하게 될 것이오. 지금 우리 군사들이 흩어졌지만 그래도 모을 수 있을 것이고, 호남의 수군도 와서 구원 하도록 청할 수 있을 것이오." 라고 하니 원균이 그 계책을 따라 율포(栗浦) 만호 이영남(李英男)을 보내어 이순신에게 구원을 청하게 하였다... (後略) - 선조수정실록 1592년 5월 - 에서 발췌 왜적이 쳐들어오자 경상우수사 원균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전선과 무기들을 바다에 가라앉히고 1만여 수군들을 해산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육지로 올라가 적을 피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옥포 만호 이운룡(李雲龍)이 자신의 상관인 원균을 찾아내어 위와 같이 말하며 이순신과 함께 싸울 것을 제안합니다. 이운룡은 후일 제7대 삼도 수군통제사가 됩니다만 임진왜란 초기에는 원균의 부하로 고생을 많이 하신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나의 후계자라고까지 말씀하시며 가장 신뢰한 이운룡은 어떤 장수였을까요? 지금까지는 이순신의 부하들에 대해서 많은 소개가 있었습니다만 원균의 부하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운룡(1562 ~ 1610)은 경상도 청도에서 태어났으며 무과에 급제하여 녹둔도 전투 후에는 이순신과 함께 백의종군도 하는 이순신과의 깊은 인연이 있는 장수 입니다. 옥포 만호로 재직중에 임진왜란을 만나 이순신 휘하에서 옥포해전, 사천해전, 한산대첩, 부산포해전 등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습니다. 전후 선무 공신 3등으로 식성군(息城君)으로 봉해졌고 사후에는 병조판서로 추증되었습니다. 통영의 충렬사는 이운룡이 통제사가 된 후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지금까지 충무공 이순신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통제사가 된 후 일기를 쓰셨는데 거영일기로, 병영예식, 군의 장비, 훈련상황 등을 기록하여 당시의 군사제도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를 남겼습니다. 리더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팔로워들은 달라집니다. 좋은 상관을 만난 이운룡이나 좋은 부하를 만난 이순신 장군이나 사람의 인연은 가꾸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다 내가 만드는 인연 아니겠습니까?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