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초 제조 기술자 군관 정로위 이봉수.....
1592년 2월 4일(乙未).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후 북봉(北峯)의 봉화대 쌓은 곳으로 올라가 보니 축대 자리가 아주 좋아서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이봉수가 부지런히 일했음을 알겠다. 하루 종일 관망하다가 해질 무렵에 내려와서 해자 구덩이를 돌아보았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전서] - 에서 발췌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달 전에 전라좌수영의 5관 5포를 순시 합니다. 봉화대를 쌓은 군관 이봉수를 칭찬하는 글, 거북선에 쓸 돛배를 받았다는 글 등 전쟁에 준비하는 글들이 난중일기에 나옵니다.
싸움마다 이기는 승리의 주역들은 이순신 장군 뿐만 아니라 함께 한 부하장령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총통을 쏘아 올리는 화약에 관한 한 군관 이봉수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관 정로위 이봉수(1563 ~ 1634)는 본관이 경주이며 명문가 출신으로 사촌동생 이방직과 함께 전라좌수영의 정로위(지방 명문가의 아들을 위한 귀족군) 로 들어갔습니다. 자진 입대 한것이죠.
이순신 장군에게 신임을 받은 이봉수는 염초 만드는 일을 지시 받고, 과학자도 아니고 화학자도 아닌 그는 최무선 장군이 남겨놓은 기록 몇 줄에 의지하여 염초를 만들어 내었고 그 염초로 만든 화약은 조선 수군의 든든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임진왜란은 화약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화약을 제일 처음 발명한 중국에서조차 그 비법을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았으며 일본은 일본대로 다네가시마에 흘러들어온 포르투갈의 난파선으로부터 화약 제조법을 배웠지만 조선은 정로위 이봉수에 의해 염초 제조법을 개발하고 화약을 만들었으니 실로 대단한 실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이봉수가 만든 화약으로 총통으로 무장한 무적함대가 되어 일본군을 무찌르는 불패의 신화를 이어 나갔으니 숨은 공로자는 군관 이봉수였습니다. 적진포 해전에서도 왜적선 대선 1척을 무찌르는 공로도 세우며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큰 활약을 하였지요.
임진왜란 속에 숨은 과학자 이봉수, 그의 탐구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며 나라를 구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과학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누리호도 쏘아 올리고 코로나 바이러스도 퇴치하는 과학 한국을 이끌어가야 할 주역들은 바로 우리 후손들이 아니겠습니까? 군관 이봉수를 이어갈 꿈나무들에게 충무공 정신을 전파할 사람은 바로 우리들 입니다.
글 이부경 010-2228-1151/pklee95@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