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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골포 해전.....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2-07-11

조회 13,778



안골포해전....

9일에는 가덕(加德)에서 안골포(安骨浦)로 향해
가는데 "(안골포에) 왜선 40여 척이 정박해 있다."
고 탐망선이 와서 보고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도
우수사와 경상우수사와 더불어 왜적들을 토벌할
계책을 상의했으나, 날이 이미 저물었고 역풍도
크게 일어서 나아가 싸울 수가 없었으므로, 거제도
온천도(溫川島 : 칠천도)에서 밤을 지냈습니다.  
- (後略) -  [견내량파왜병장]  에서 발췌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갑자기 당한 왜적의 침략으로 임금이 의주까지 피난을
가야했던 절체절명의 국난 앞에서 한산대첩의 승첩
보고서는 임금을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백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겠습니까?

이순신의 3차 출전 한산대첩이 7월 8일에 있었는데 
다음날 안골포에도 적이 있다는 첩보를 듣고 9일에
함상 작전회의를 합니다.  10일 새벽에 일찍 출진할
것이며 우리가 접전하면 가덕도에 매복해 있는 이억기는
복병선을 남겨두고 즉시 달려오도록 약속하고 이순신과
원균은 다시 학익진 전법으로 공격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순신의 전투방식이나 전략은
항상 이길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놓은 다음, 싸우고 싶은
장소에서 싸우고 싶은 시간에 싸우고 싶은 방법으로
전투를 하는 것으로 이번 안골포해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측 기록에는 "구키 요시다카와 가토 요시아키 선단은
7일 가덕에 닿았다가 8일 안골포에 왔다.  9일 조선수군의
대소 병선 100여 척이 공격해 왔는데, 화포와 불화살들이
비처럼 쏟아졌고, 아군도 대포를 쏘아 서로 살상했다.
해전은 아침8시경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 되었는데, 조선의
배들은 선체 전체를 쇠로 만든 것이 있어서 아군의 포가
파괴할 수 없었다.  -  [고려선전기高麗船戰記] 에서 발췌

전날 한산대첩으로 사기가 오를대로 오른 조선수군들을
통솔하는 모습에서 리더로서의 겸손과 신중한 자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안골포해전 역시 완승을 거두며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안겨준 엄청난 패배감과
굴욕감은 다음과 같은 명령서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앞으로 해전은 없다.  조선수군과는 싸우지 마라." 는
지시는 조선의 침략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탐욕과 광기
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는 왜군들의
조총소리에 놀라서 도망친 조선 관군들의 패전사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면서도 조선수군의 대포소리에 놀라서 왜군들이
싸움을 피하면서 도망간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통찰력을 왜 필요로 할까요?
밝은 미래를 바라 보려면 과거와 현재를 엮고 있는 씨줄과
날줄을 바르게 직시할 수 있는 판단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 입니다.  급변하는 새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리더의
첫번째 조건이기 때문 입니다.

글 이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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