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당항포해전!!
1594년3월5일(癸未). 맑다. 겸사복(兼司㒒: 윤붕尹鵬)을 당항포로 보내어 적선을 불태웠는지 탐문케 하였더니, 우 조방장 어영담이 보고하기를, 적들이 우리 군사들의 위엄을 겁내어 밤을 타고 도망가 버렸으므로 빈 배 17척을 남김없이 불태웠다고 하였으며, 경상수사(元均)의 보고도 같은 내용이었다. 아침에 순변사로부터도 토벌을 독려하는 공문이 왔다. 원 수사는 나의 배로 왔고 여러 장수들은 각각 돌아갔다. 저녁에 광양의 새로 만든 배가 들어왔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명나라는 왜적들과 강화교섭을 하면서 왜군진영을 침범하지 말고 싸우지 말라는 금토패문을 보내어 조선을 위협합니다. 그러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명나라 장수의 명령까지도 거부하고 출동하여 왜적의 배 31척을 불태워버리는 제2차 당항포해전의 압승으로 응답합니다. 왜적들은 강화교섭을 하면서도 서쪽을 넘보면서 연안의 백성 들을 살인, 약탈 하는데 가만히 좌시할 수 없었던 이순신은 당항포로 이동하는 왜적을 발견하고 신속한 기동력과 적의 주력부대의 퇴로를 차단하는 등 용의주도한 전략으로 통쾌한 승리를 거둡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전투중에 전염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를 헤매면서 위험한 고비를 넘기며 한 달 동안이나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장군은 불굴의 의지와 신념, 그리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삶의 현장에 우뚝 서 계셨습니다.
그 당시 조선수군은 기근과 전염병으로 큰 위기에 봉착하지만 지루한 강화교섭기 중에도 해상활동과 전력 증강 노력은 중단없이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판옥선 건조와 무기제조, 둔전경영과 군량미 조달 등 자력으로 전쟁을 치루어야 하는 군비확장에 온 힘을 기울이며 차기 전투의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 입니다.
위기상황일때 일수록 더 공격적으로 전략을 세우고 도전하라고 조언 합니다. 그러나 실행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주변 환경이 좋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많이 위축되어 용기를 내지 못하곤 합니다.
그러므로 이순신의 23전23승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 하는 것은 이러한 위기상황을 이겨낸 내공이 쌓여서 더 큰 어려움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슬기롭게 극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글로벌 경제전쟁시대, 국가안보외교까지 감안하여 사업을 해야 하는 CEO 여러분! 이순신에게 배우는 위기관리시스템의 운용은 너무도 힘들지만 한 번 도전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글 이부경 |